檢 ‘대장동’ 항소 포기 무슨 일이
수사팀 “수익 추가 환수 등 다퉈야”… 중앙지검 항소 결정에 대검 “재검토”
수사팀 “법무부가 막아” 반발 입장문… 현직 검사장 “총장대행이 정권 부역”
법무부 “항소 포기 지휘한 사실 없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 뒤 8일 사의를 표명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 동아일보DB
7일 오후 11시 53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을 담당한 검사에게 이준호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가 통보했다. “중앙지검장이 불허했다. 항소를 승인하지 않겠다.”
항소 시한을 불과 7분 앞둔 시점이었다. 같은 시간 대장동 수사팀 실무진은 항소장을 들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중앙지검 수뇌부는 별다른 설명 없이 ‘승인 불가’ 방침을 내렸고, 밤 12시가 지나면서 검찰은 항소를 결국 포기했다.
8일 오전 4시경 대장동 수사팀은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법무부 및 검찰 수뇌부의 외압으로 인해 사실상 항소 포기를 강요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대검찰청 차장)이 “정진우 중앙지검장과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정 지검장이 “의견이 달랐다”고 사실상 반박하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장동 수사팀은 지난달 31일 1심 판결을 분석한 뒤 이달 3일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항소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1심 재판부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등 5명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일부 법리를 이유로 무죄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장동 일당의 수익 7800억 원 중 470억 원만 추징된 점을 상급심에서 다퉈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수사팀에 따르면 정 지검장이 ‘항소 제기’ 방침을 결정해 알린 건 5일이었다. 다만 대검은 6일 “법원에서 지적한 검찰의 별건수사 등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휘했다. 이후 항소 제기 마감 날인 7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정 지검장과 이 차장검사 등은 수사팀의 항소장에 대해 승인 결재를 냈다.
하지만 그날 오후 7시 반경 돌연 대검은 중앙지검에 자세한 설명 없이 “대검 반부패부장이 재검토해 보라고 한다”면서 항소를 승인하지 않았다. 항소 시한을 불과 4시간 반가량 남긴 때였다.
결국 수사팀 실무진은 오후 10시 20분경부터 항소장을 소지한 채 법원 사무실 앞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오후 11시 20분까지도 대검은 항소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이에 수사팀 검사들은 이 차장검사를 찾아가 “항소를 불허할 이유가 전혀 없고, 이미 항소를 결정한 사안이므로 결단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대검에서 불허했고, 중앙지검장도 불허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 차장검사는 그날 오후 11시 45분경 정 지검장과 통화한 뒤 11시 53분경 수사팀에 항소 불허를 통보했다. 수사팀이 마지막으로 “대장동 관련 다른 사건의 공소 유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재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총장 대행 “협의했다” vs 지검장 “의견 달랐다”
항소 포기 후 4시간여 만에 수사팀이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법무부 검찰국에서 (정성호) 장관에게 항소 필요성을 보고했지만 장관과 차관이 이를 반대했다고 들었다”며 “중앙지검과 대검 수뇌부가 항소 필요 판단을 번복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해 대검 및 법무부 수뇌부가 명확히 설명해 달라”고 반발하는 입장문을 내면서 검찰 내 갈등이 표출됐다. 결국 정 지검장은 8일 항소 포기 결정 12시간여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노 권한대행은 9일 입장문을 내고 “대장동 사건은 통상의 중요 사건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 제기하지 않기로 판단했다”며 “저의 책임하에 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곧이어 정 지검장은 입장문을 내고 “중앙지검의 의견을 설득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며 “대검의 지시를 수용하지만 중앙지검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번 상황에 책임을 지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검찰 내부에선 대검 지휘부와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은 8일 노 권한대행에게 “검사로서 법치주의 정신을 허물고 정권에 부역하여 검찰에 오욕의 역사를 만든 책임을 지고 당장 사퇴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검찰 내부망엔 “장관 사퇴를 요구한다”는 글이 게재됐다. 대장동 수사를 담당했던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은, 그리고 진실은 죽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는 “통상 대검과 소통 과정에서 있는 ‘의견’ 정도를 제시했을 뿐, ‘항소 포기’ 지휘를 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10일 오전 출근길에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항소 포기 과정 전후로 검찰 최고위층 간 이견이 노출된 만큼 향후 정치적, 법률적 논란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개입해 항소 포기에 이르렀다면 직권남용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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