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그만둬도 다시 현대車 갈 수 있는 인재 양성 시스템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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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오봉 전북대 총장의 ‘학생 중심 대학’ 큰 그림

양오봉 전북대 총장이 9일 서울 마포구 전북대 서울사무소에서 어떻게 전북대가 혁신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전북대 제공
양오봉 전북대 총장이 9일 서울 마포구 전북대 서울사무소에서 어떻게 전북대가 혁신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전북대 제공
“서바이벌 스페셜티(Survival Specialty·특별한 생존, 차별화된 생존) 하는 중입니다.”

생존과 소멸의 갈림길에 서 있는 지방대 위기를 맞아 대학 혁신이 화두가 되는 이때 양오봉 전북대 총장이 어디를 가든 강조하는 말이다. 전북대를 처절하리 만큼 차별화시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의미다.

2023년 2월 취임한 양 총장은 전북대 혁신 포인트를 학생에 맞췄다. 전북대 재학생이나 수험생이 전북대를 ‘다니고 싶은 대학’ 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생 복지는 기본이다. 만든 지 오래돼 시대에 뒤떨어진 학생 및 학사 관리 시스템부터 뜯어고치고 있다. 낡은 전산시스템으로는 학생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학업 관리나 정보 지원 등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다른 국가거점국립대들보다 한 박자 빠르다.

구색 맞추기용 오프라인 강의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다는 판단이다. 교육은 전북대 교수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수강하게끔 할 수 있다. 누가 강의하는지 그 스펙트럼을 고정시켜 놓지 않겠다는 얘기다. 우수한 온라인 강의를 비롯한 관련 콘텐츠 확보가 대학 미래 경쟁력이라고 본다.

이처럼 강의를 개방하고 연구와 토론, 실습을 강화해 학생을 만족시켜야 대학이 살 수 있다. 이것이 차별화이고 지역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양 총장 취임 후 전북대는 2023년 11월 교육부 ‘글로컬대학 30 사업’ 대학으로 선정됐다. 또 지난해 11월 한국표준협회 ‘2024 서비스 품질 지수’ 평가에서도 지방 국립대 1위에 6년 연속 올랐다. 혁신이 탄력을 받고 있다.

양 총장은 9일 전북대 서울사무소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전북대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 내겠다”면서 그 구체적인 방안을 자세히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차세대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착수

―지난해는 ‘학생 중심 대학’을 위한 혁신 원년이었다.

“모집 단위 광역화와 전공 선택권 강화를 혁신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2025학년도부터 106개 모집 단위를 46개로 광역화하고, 정부가 정원을 관리하는 전공인 보건의료계열 등을 제외한 모집 인원의 86%가량을 무전공으로 모집한다. 전학 및 전과 비율도 늘렸다. 다학제적 접근을 강화한 것이다. 다음 달 17일이면 임기 만 2년이 된다. 취임할 때 ‘꼭 먼저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20년가량 된 대학 전산시스템이었다. 낡은 시스템에 계속 기능만 추가하다 보니 누더기처럼 돼 버려 효율적인 학사 및 행정 관리가 어렵다. 사용자 친화적 서비스도 힘들다. 인공지능(AI) 시대는 다가오는데 지금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는 힘들다. 그래서 갈아엎고 있다. 학사, 행정, 포털서비스 같은 대학 운영 전반에 AI를 도입하는 차세대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120억 원을 투자했다. 시작할 때부터 예산을 절대 깎지 말라고 주문했다. 전북대 재구성을 위한 기반 다지기다.”

―전북대생들이 정말 바라던 것 아닌가.

“이 시대에 어떤 과목 학점을 땄는지, 안 땄는지 서류 뒤져 가며 확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통 단일 전공이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기본이 2개 이상 복수 전공이다. 다양한 교과 활동과 학습 경험을 교직원이 일일이 손으로 적어 파악하기 어렵다. 학생 중심 대학이 되려면 맞춤 학사 관리로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질문에 답을 해 주며 경력 관리도 해 줘야 한다. 학생 개개인 데이터와 연결된 대학의 ‘뇌’를 만드는 일이다. 그동안 대학의 도서관이 심장이었다면 이제는 심장과 함께 정보화시스템이라는 뇌도 갖춰야 한다.”

―혁신 첫 단계부터 체질 개선이 확실한 것 같다.

“AI 정보화의 길을 연 총장으로 기억된다면 영광이다. 전북대는 학생도, 교수도, 직원도 많다. 건물도 약 120개 동이다. 기자재도 많다. 하지만 항상 부족하고 보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데이터베이스 관리가 효율적이지 않고 시스템이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룡이 힘이 없어 죽겠나. 높은 나뭇가지에 별로 없는 잎을 무리하게 따 먹으려다 죽는다.”

온라인 학위 모델-우수 강의 콘텐츠 확보 절실

―특성화 역량은 무엇에 집중해서 키울 것인가.

“세계 대학 교육은 바뀌고 있다. 미국 조지아텍(공대)은 늘 메사추세츠공대(MIT)를 넘어서겠다고 한다. 그런데 조지아텍이 온라인 학위 과정을 개설해 학기당 6만 달러를 받고 세계 1만5000여 명에게 학위를 줬다. 온라인 학위라고 해서 성적표, 졸업장에 아무런 차등을 두지 않는다. 대학 교육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학위를 받은 학생들이 구글이나 애플에 자신있게 취업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도 비대면 강의를 도입했다. 예전에는 지방 공무원이 행정대학원을 오가며 강의 듣기가 어려웠다. 이제 분명하게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지향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이라는 낡은 우물에서 물을 떠 마시는 시대는 지났다. 세계 유명 대학이나 교수가 강의를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교수 한 명이 세계 곳곳의 학생들을 가르친다. 실시간으로 평가를 받으며 스스로 수준을 높인다. 전북대도 이렇게 해야 한다. 온라인화에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 우수한 온라인 강의 콘텐츠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앞으로 대학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대학은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강의는 교수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토론이나 실험, 실습 시스템 등으로 학생들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은 없어질 것이다. 강의를 고집하지만 말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우리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해보고 연구도 같이 하자며 끌고 가야 한다. 토론과 실습은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에 와서 한다. ‘프로블럼 베이스드 러닝(Problem Based Learing·문제 기반 학습·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학생 중심 학습 환경으로 사고 전략과 지식을 배움)’을 대학이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전북대가 국가거점국립대라고 해도 망한다. 서울대가 1등이니 그 다음은 전북대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다. 가장 앞서가는 대학이 돼 보자는 것이다.”

―주변 대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우리 대학만 잘살려고 하지 않는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전북의 다른 대학과도 지식과 자원 등이 연결됐으면 한다. ‘글로컬대학 30 사업’ 계획에도 500억 원을 전북 지역 대학 특성화를 위해 투입하고 대학 간 벽을 허물겠다고 밝혔다. 캠퍼스를 개방해 지역 기업과 교육 및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모델이 생긴다.”

“2035년까지 외국인 학생 1만 명 유치”

―새로운 시스템 구축은 글로벌 역량 강화와도 연결된다.

“전북대 재학생은 대학원생 포함 2만5000여 명이다. 2028년까지 외국인 학생 5000명 유치를 목표로 잡고 있다. 2035년까지 1만 명이 목표다. 이만큼 외국인 학생이 오지 않으면 전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먼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육 플랫폼 혁신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외국인 학생이 대학에 잘 정착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인성, 학습을 비롯해 여러 모로 외국인 학생이 괜찮으면 대학이 지방자체단체에 추천해 일정 범위 내에서 비자가 나오도록 해 줘야 한다.”

―문화적 배려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학생을 제대로 대접해 대학에 남도록 해야 대학이 산다. 어렵게 한국 대학에 왔는데 한국어를 빨리 배우라고 재촉하면 어떻게 될까. 교수들이 외국인 학생들에게 ‘내가 왜 영어로 너희에게 강의해야 하는데…’라는 식으로 대하면 당연히 학생들이 떠날 것이다. ‘고객’인 학생이, 즉 사용자가 원하면 영어를 쓰도록 해 줘야 한다. 차별이 없어야 한다. 불편함을 줘서는 안 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절실함이 느껴진다.

“2040년 국내 전체 학령인구를 27만 명으로 예상한다. 2023년 태어난 아기는 23만 명이다. 현재 전국 대학 입학 정원은 47만 명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학으로만 학생이 몰리니 지방대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학을 지금에서 절반으로 줄인다고 해결될까? 결국 국가경쟁력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국가경쟁력은 대학 숫자에 비례한다고 본다. 대학이 줄어드는데 국가경쟁력이나 국내총생산(GDP)이 유지될 수 없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지만 어떻게든 대학이 특성화를 해 학생을 유치하고 유지하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서울대가 개교한 지 78년 됐고 전북대도 개교 77주년이다. 80년 가까이 투자가 이뤄졌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정리하고 없앨 수는 없다.”

―국가 차원의 의제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중동의 부자나 중국 학생들은 미국 대학을 못 가서 난리다. 돈 보따리 싸들고 가도 입학 쿼터가 모자라 못 들어간다. 미국처럼 대학이 탄탄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세계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게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지금 해야 한다. 중고등학교까지는 한국 학생이 미국 학생보다 우수하다. 대학 4년 동안 뒤바뀐다. 미국 대학은 어디든 학생이 공부를 엄청나게 하면서 다각적으로 차별화된 전공을 몇 개씩 이수한다. 소위 삼성전자에 다니다 잘려도 현대자동차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존경 받는 전북대를 만들기 위해


―전북대는 대학의 경제적 가치(6조3300억 원)을 분석해 내놓았다.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6년 연속 지방 국립대 1위다. 대학이 학생에게 함께 목표를 향해 가자고 동기를 부여한다.

“프라이드(자존심)가 생성되고 있다고 본다. 미국 학생은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만 가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의 프라이드가 나와 맞는지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 대학의 장점과 특성을 잘 활용하면서 혜택을 받을 줄 안다. 전북대만의 프라이드는 대학이 존경받을 때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존심,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자랑할만한 정체성은 전북도민이나 지역 기업에 서비스 마인드로 다가가 그들이 못하는 것을 돕는 과정에서 생긴다. ‘우리는 모르겠으니 다른 데 가서 알아봐라’라고 하면 안 된다. 어려운 중소기업의 절박한 사장님들이 도움을 청해도 ‘전문학교가 잘하니 그곳에 가 봐라’라는 식으로 얘기해도 안 된다. 문화 혁신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직원에게 거짓말하면, 갑질하면 안 된다고 늘 말한다. 그래야 학생이 오고 미래가 온다.”

#에듀플러스#전북대#인재 양성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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