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전공의 절반만 복귀해도 다행…파격 지원 없으면 소청과 붕괴 막기 어려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0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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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복귀 선언과 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대표 선출 후, 1년 5개월째 이어져 온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필수의료 전공의들은 여전히 복귀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증·응급 환자를 다루는 필수과일수록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소송 부담이 큰 반면, 수가 인상 등 정부 지원책은 현장에서 체감할 만큼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출생아 급감의 직격탄을 맞은 소아청소년과(소청과)도 마찬가지다. 2016년 123.9%였던 소청과 신규 레지던트 지원율은 2023년 16.2%까지 급감했다. 지난해엔 지원율 25.7%로 다소 회복했지만, 올해는 의정 갈등 여파로 정원의 2.4%(5명) 모집에 그쳤다.

소아청소년과 사직 전공의 최윤영 씨(왼쪽)와 김서연 씨는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소아 의료 붕괴를 막으려면 의료사고 소송 리스크를 줄이고, 파격적인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대로라면 예비 1년 차가 절반만 돌아와도 다행이죠.”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난 소청과 전공의 김서연 씨(34·서울아산병원 4년 차)와 최윤영 씨(34·서울대병원 4년 차)는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예비 1년 차는 지난해 초 레지던트로 임용된 직후 사직한 전공의들이다.

두 사람을 포함한 소청과 전공의 4명은 지난해 10월 ‘다음 세대 소아청소년과 모임(NGP)’을 만들었다. 소청과 붕괴를 막기 위해 젊은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자는 취지였다. 참여 전공의는 현재 약 120까지 늘었고, 올 5월부턴 저연차 전공의 교육도 시작했다. 김 씨는 “저연차 전공의들이 소청과를 제대로 경험 못 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김 씨는 수도권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서 근무 중이고, 최 씨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의정갈등으로 수련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전문의가 됐을 텐데, 전임의(펠로)로 병원에 계속 남을 계획이었나.
▽김=연구와 진료를 병행하고 싶어 의사과학자(MD-PhD, 의사 면허증과 박사 자격을 동시에 보유) 과정을 이수했다. 특히 소아혈액종양 세부 전문의가 되고 싶었다. 전국에 약 60명밖에 없고, 지방엔 특히나 의료진이 부족한 분과다.
▽최=인턴 전에 희귀난치성 질환 유전자 치료 연구를 하고 싶어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임상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소청과에 지원했다. 소아 희귀질환 연구와 진료를 같이 하는 게 목표였다.

소아청소년과 4년차 레지던트 김서연 씨는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전공을 살릴 기회가 없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선배나 동료들도 비슷한 진로를 희망하나.
▽김=아이들이 좋아서 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떠나는 경우가 많다. 소아청소년과 같은 소위 ‘적자과’는 세부 전문의가 돼도 전공을 살리는 게 쉽지 않다. 대학병원에 남아도 인원이 부족하니 당직도 잦고,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리스크 등 부담이 크다. 떠난 선배들도, 망설이는 후배들도 이해가 된다.
▽최=소아혈액종양, 소아신장 등 세부 전문의가 되더라도 교수로 갈 자리가 별로 없다. 병원은 환자가 적은 분야에 채용을 늘리지 않는다. 소청과뿐 아니라 소아재활, 소아외과, 소아정형 등 다른 진료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아재활을 전공한 친구는 한동안 일을 못 구했다. 겨우 취직한 병원에선 “소아 환자는 일주일에 하루만 진료하고, 4일은 성인 환자를 보라”고 했다더라.
▽김=결국 소청과 전문의가 소아 진료를 포기하고 성인 진료나 미용 의료를 분야로 떠나게 된다.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의사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거다.

―대형병원에서도 소청과 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최=어떤 병원은 비용을 아끼려고 응급실 촉탁의 계약을 해지해서 정년을 앞둔 소청과 교수가 당직을 서기도 한다. 소아 감염병 유행으로 소아 폐렴 입원이 늘어나면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병원도 있다. 중증으로 분류가 안되는 소아 폐렴 환자를 계속 입원시키니 병원장이 “교수님 때문에 병원 중증환자 비율이 낮아진다”며 입원을 줄이라는 압박이 있었다는 얘길 들었다.
▽김=그래서 소아 질환을 성인과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담 부서를 신설할 필요도 있다. 소아는 같은 질환도 성인에 비해 위험한 경우가 많다. 이런 특성에 맞게 소아 질환 상병 코드도 성인과 분리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의료공백을 겪으며 소아 진료 수가를 인상했는데….
▽김=극소수 희귀·중증 소아 환자만 인상됐을 뿐, 대다수 소아환자 수가는 그대로다. 정부가 2028년까지 10조 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한다지만, 각 진료과로 나누면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최=건강보험 재정 같은 한정된 자원으로 나눠먹기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소아 의료만큼은 매년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저출산 예산 일부를 끌어오는 등 정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소아청소년과 4년차 레지던트 최윤영 씨는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권역별 소아의료 네트워크를 강화해 지방의 소아의료 공백을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소청과 붕괴를 막으려면 수가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최=소아 환자는 성인보다 리스크가 크고, 더 많은 시술 보조 인력이 필요하다. 기존처럼 20%, 30% 가산하는 방식이 아닌, 2~3배 파격적인 인상이 필요하다.
▽김=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일수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의 소아의료를 유지하려면 ‘역차등 수가’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가령 한 지역의 소아청소년과 운영에 하루 최소 환자 50명이 있어야 한다면, 환자가 이보다 적을 때 부족한 환자 수만큼 가산 수가로 수익을 보전해 주는 것이다.

―지역은 수가 인상만으론 필수 인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나.
▽최=각 병원이 모든 세부 진료과 의사를 고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권역 내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순 있다. 같은 진료권 내에서 A 병원에 소아신경, B 병원에 소아심장, C 병원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있다면 이들이 공동 진료체계를 구축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김=네트워크뿐 아니라 권역센터를 키워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배후진료 역량을 갖춰 소아응급환자 대응이 가능한 곳을 만들어야 한다. 전원 체계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좁아 이송 체계만 잘 갖춰도 살릴 수 있는 환자가 늘어난다. 지금은 응급환자를 처치하면서 의사가 직접 이송 가능한 병원을 찾는 전화까지 돌려야 한다. 권역별로 소아응급환자 이송을 전담하는 전원센터가 필요하다.

―젊은 소청과 의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훨씬 큰 것 같다.
▽김=소아 환자는 본인이 겪는 의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직접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이 길을 선택한 동료들도 의정 갈등을 겪으며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남은 소수라도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소아 환자를 대변하고, 이들을 돌볼 의사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국 단위 네트워크를 만들자고 했고, 현재 약 120명이 동참하고 있다.

―후배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한 계기는.
▽최=지방 수련병원은 의국이 소규모인 경우가 많다. 복귀하더라도 선배가 입대했거나 고연차가 없으면 후배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 그런 공백을 줄여주고 싶었다.
▽김=올 5월부터 1, 2년 차 30~40명을 대상으로 소청과 기본 진료 관련 교육을 시작했다. 고연차 전공의 강의뿐 아니라, 몇몇 교수님들도 힘을 보태 주시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실에선 자체 술기 워크숍도 준비해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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