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로 가기 위한 지중해 루트… 난파-억류 등 곳곳에 위험 도사려
만화가 겸 탐사 보도 기자인 저자… 1년간 난민 구조선에 승선해 취재
현장서 느낌 감정 그림으로 엮어
◇지중해의 끝, 파랑/이폴리트 글, 그림·안의진 옮김/224쪽·3만4800원·바람북스
저자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난민 구조선에 1년 동안 동승했던 탐사보도 기자로, 자신의 경험을 스케치북에 그림으로도 남겼다. 그 결과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의 현실이 섬세한 일러스트로 탄생했다. 바람북스 제공
이 그래픽노블 혹은 만화책에서 ‘파랑’은 무얼 뜻하는 걸까.
책을 짓고 그린 이는 프랑스 만화가 겸 탐사 보도 기자. 1년 동안 난민 구조선에 승선해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을 풀어냈다. 수많은 난민이 새로운 삶을 찾아 건너는 길이자, 동시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의 현장인 ‘지중해’가 배경이다.
푸른 지중해는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 유럽연합(EU) 국가로 이주하려는 난민 상당수가 이용하는 루트. 한데 2015년 4월 그 바다를 건너려던 난민 구조선 다섯 척이 한꺼번에 난파돼 1200명 이상이 숨졌다. 그해 9월에는 그리스 바닷가에 떠밀려 온 시리아 난민 아이 쿠르디의 사진이 세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책은 이런 지중해에서 난민을 구하는 구조선 ‘오션 바이킹호’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션 바이킹호에는 구조대원과 간호사, 의사, 물류 담당자 등이 탑승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려 힘을 합친다.
바다 위를 떠도는 이 배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난민들을 마주한다. 전쟁과 빈곤, 박해 등 다양한 이유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 그들에게 유럽은 새로운 삶을 꿈꾸고픈 터전이다. 하지만 이들을 구하는 선행들이 구조대원을 행복하게만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비판이 따르거나, 내륙에서 구조를 지원하는 사무소는 극우 단체의 테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빚어지는 높은 현실의 벽. 특히 작품의 배경이 된 시기는 팬데믹이 세계를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던 2020년. 난민 구조를 껄끄럽게 여기던 국가들은 방역 지침을 문제 삼아 구조선을 억류하기 일쑤였다.
저자와 동료들이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은 인류의 존엄과 연대의 가치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그 현장은 저자의 사실적이면서도 따스한 그림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매일 무전기로 들려오는 구조 요청. 구조된 이들의 희망과 불안.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다양한 갈등. 이를 목도한 저자의 펜 끝에서 푸른 바다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이란 두 얼굴을 드러낸다.
이 책의 큰 매력은 이처럼 예술성과 다큐멘터리적 시선의 오묘한 결합이다. 섬세한 그림 속에서 실제 구조 현장의 긴박함과 참여자로서 저자가 느끼는 내면의 고민이 서로 맞물린다. 이를테면 저자는 구조선 경험을 통해 일상에서도 여러 단상을 느낀다. 아프리카 대륙의 프랑스 영토인 레위니옹섬에 사는 프랑스 시민인 그는, 해수 풀에서 헤엄 치며 깔깔거리는 친구 아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물에서 건졌던 난민 아이 아이샤를 떠올린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14∼2024년 지중해를 건너다 세상을 떠난 난민은 3만1180명. 숫자로는 막연하게 느껴지던 참담함이, 책에선 저자가 직접 겪은 일화들을 통해 피부로 와닿는다. 누군가에겐 출발일 수도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지중해의 ‘파랑’은, 그래서 왠지 더 처연하기도 하다.
책의 끝자락도 잘 살펴봐 주시길. 저자가 오션 바이킹호에서 틈틈이 그린 다양한 인물화와 스케치가 수첩 형태로 실려 있다. 부록으로 오션 바이킹호의 중앙 지중해 항로와 2015년부터 난민 구조 활동을 해온 비정부기구(NGO)인 ‘SOS 메디테라네’의 구조 활동 연표도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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