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푸른색은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던 색이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바다의 색을 푸른색이 아닌 “포도주처럼 검은색”이라고 묘사했다. 최초의 안료는 돌을 갈아 만들었으니 황토색, 갈색, 붉은색 위주일 수밖에 없었다. 푸른색은 언제부터 과학, 예술, 언어에 등장하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스페인 라코루냐대에서 재료과학을 연구하는 화학자다. 예술 속 색채와 재료를 화학의 언어로 읽어내면서 과학이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푸른색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값비싼 색으로 알려진 울트라머린 안료는 ‘청금석’이라는 푸른색 광물에서 비롯됐다. 안료에 ‘울트라머린(바다를 넘다)’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청금석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발견돼 바다 건너 유럽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울트라머린은 한때 금보다도 비쌌다. 미켈란젤로는 울트라머린이 너무 비싸 ‘그리스도의 매장’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울트라머린을 사용한 그림은 그 자체로 고급스러운 작품이 됐다. 특히 성스러운 푸른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성녀의 옷을 그릴 때 주로 사용됐다.
19세기 울트라머린의 가치가 정점에 달했다. 청금석을 깨지 않고도 울트라머린을 합성할 방법이 시급히 필요했다. 1824년 프랑스 국가산업진흥협회는 300프랑 이하의 비용으로 울트라머린 합성에 성공하는 사람에게 6000프랑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화학자 장바티스트 기메가 1828년 산업용 울트라머린을 최초로 개발했고, 이후 합성 울트라머린은 ‘프렌치 울트라머린’으로 불리게 됐다.
제프 쿤스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뒤편에 설치한 조형물 ‘튤립’은 강철로 만들어졌다. 강철은 철과 탄소가 혼합된 합금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산화된다. 이를 막기 위해 크롬을 첨가했다. 크롬은 철보다 먼저 산화돼 철을 보호한다. 이 과정에서 얇은 산화막이 형성되는데, 이 층은 프라이머처럼 표면을 정돈해 래커가 매끄럽게 달라붙도록 만든다. 덕분에 ‘튤립’은 마치 거울처럼 반짝이는 표면을 갖게 됐다. 화학자의 큐레이팅을 따라 읽다 보면 예술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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