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
광복 후에도 고향으로 귀환 못하고
수십 년간 이름-국적 계속 바뀌어
◇슬픔의 틈새/이금이 지음/448쪽·1만8500원·사계절
1995년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축제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공식적으로 발표됐을 때 ‘철거 대신 다른 곳으로 옮겨 보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테고 철거의 이유도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던 역사도 잊지 않기 위해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복궁을 가리는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고, 어딘가 상징적인 곳으로 옮겨 힘 없는 나라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묵언의 징표로 삼는다면 그 또한 훌륭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을 문학으로 조명해 온 작가가 일제강점기 말기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사할린 한인 1세대의 삶과 아픔을 담담한 필치로 담았다.
주인공은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다마코, 다시 주단옥, 올가 송까지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름과 국적이 몇 번이나 바뀐다. 그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조선인들은 소련 정부가 곧 일본에서 해방된 자신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거라고 믿었다. …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귀환선을 탈 수 없다는 걸 배가 와서야 알았다. … 대다수 조선인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항구 근처에서 지내며 귀국선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실성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생겼다.”(1부 ‘행렬’에서)
지금 우리는 ‘역사’를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로 접하지만 당대를 살았던 누군가에게 역사는 징용과 이산, 눈물과 피로 얼룩진 현실이었다.
원치 않게 왔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있는 사할린을 떠나고 싶지 않은 단옥. 사할린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살고 싶은 단옥의 동생.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사할린에 남은 단옥의 친구 유키에. ‘슬픔의 틈새’ 외에 그들 모두를 관통하는 말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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