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 서리의 앞잡이 - 시름없는 어제 아침의 가을비. 1925년 9월 20일자 동아일보. 그런데 이 다섯 장의 풍경 사진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있어도 풍경 속의 작은 점처럼 스쳐 지나가듯 담겼습니다. 오늘날 신문 사진이나 작가들의 풍경 사진이 사람을 풍경의 일부로 반드시 포함하려 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 풍경 사진에 얼굴은 언제부터 들어왔을까
사진기자인 제 눈에는, 100년 전 풍경사진은 자연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당시 시민의 초상권이 지금처럼 문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진가들이 굳이 사람의 얼굴을 넣으려 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풍경 사진 속에 사람의 얼굴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요? 정확한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1980년대 후반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사람들의 얼굴이 풍경 사진에서 다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요즘 서울 프레스센터에 있는 언론중재위원회에는 초상권 관련 다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들 알아서 모자이크를 하기 때문입니다.
● 거리 지도에 찍힌 시민 얼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한국 사회는 개인정보 유출로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SK텔레콤과 KT의 고객 정보가 해킹당했고, 롯데카드 고객 정보도 새어나간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을 위한 인공지능(AI) 학습용 거리 지도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AI가 거리에서 사람 얼굴 좀 보면 어떠냐”며 규제 혁파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규정상 자율주행차와 로봇이 촬영한 영상에서 얼굴 등 개인 식별 정보는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고, 원본 영상은 원칙적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작년 2월부터 카카오모빌리티 등 일부 기업에 한해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돼 원본 영상 활용이 허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거의 모든 얼굴이 모자이크되는 현실. 정부와 사회가 이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초상권의 대안은 무엇일까
100년 전 사진은 해상도가 낮아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고, 사진기자들 역시 사람의 얼굴을 풍경 속에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시민의 얼굴이 실리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과도한 얼굴 노출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무분별한 모자이크 역시 어색합니다. 지금 신문과 방송에서 얼굴이 온전히 드러나는 직업군은 정치인과 연예인뿐입니다.
100년 전 자연에 집중했던 풍경 사진을 통해, 오늘날 개인정보와 초상권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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