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뻘건 양념에 무친 콩나물 더미에 초를 꽂았다. 눈치를 보며 성냥을 그었다. 갑자기 주변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빨리빨리 하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식탁으로 목을 쭉 빼고 목소리를 낮춰 1.5배속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손으로는 손뼉 치는 시늉만. 아직은 한산했던 오후 6시 신사동의 ‘아구찜’(표준어는 아귀찜이다) 전문점에서 중년의 여성 직원들이 의아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사진, 사진!” “됐다, 꺼도 돼!”
‘후’ 불고 재빨리 초를 뽑았다. 벌건 전분 양념이 잔뜩 묻은 초를 휴지 위에 올려놓고 직원분들께 머쓱하게 웃으며 눈인사했다. 대략 15초 만에 끝난 생일 축하 노래. 조용히 폭소하며 비로소 허리를 쭉 펼 수 있게 된 우리.
“생일 축하해. 역대급 케이크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네.”
칼칼하고 김이 펄펄 나는 그의 서른살 생일 케이크는 그렇게 ‘스뎅’ 공깃밥에 비벼지며 초록 병 소주와 백김치 국물과 함께 사라져 갔다.
남편의 생일은 2월 중순에 있다.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도, 눈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도 지난 때지만 언제나 살이 에이도록 추워 뜨겁고 칼칼한 것이 간절한 때다. 그는 언제나 한결같다. 10여년째 사시사철 “뭘 먹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언제나 ‘아구찜’과 감자탕부터 부르고 나서야 뭐가 또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사람. 그중 아귀찜이 더 앞에 나오는 건 아마도 고기를 즐기지 않는 나를 배려해서일 것이다.
서른살 생일 이후로, 그의 생일상은 늘 아귀찜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달콤한 허례허식보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리추얼이 담백한 그에게 어울린다. 함께 살게 된 뒤로는 장소도 집 근처 식당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초도 꽂지 않지만, 여전히 노래는 부른다.
저녁 시간 아귓집은 대개 술기운이 불콰하게 오른 중년 손님들로 가득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뻘건 더미를 앞에 두고 다른 손님들에게 들키지 않게 “생일 축하합니다”를 휘리릭 부르는 순간은 우리만의 의식이자 비밀스러운 농담이자 가장 진심의 축하 인사. 가장 살이 오른 토막을 서로에게 건네주며 1년을 또 함께했음을 축하한다.
“내년 생일에는 새로운 가게를 찾아볼까?” “그럴 때도 됐지. 하지만 이 집을 배신하는 건 좀 미안한데 어쩜 좋지.”
앞치마를 목에 걸고 올해의 아귀찜을 후후 불어가며 먹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1년 뒤, 10년 뒤를 넘어 환갑잔치에도 아귀찜을 내놓는 상상에 이른다. 잔칫상에 가스버너를 준비해 두지 않는 이상 마무리 볶음밥은 못 할 텐데 어쩌나. 이토록 실없는 농담을 나눌 수 있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생일이란 무엇인가, 아끼는 사람을 축하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해마다 2월 중순이면 동네 식당에서 4만원짜리 아귀찜 소자를 주문하며 생각한다.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라 1인당 20만원짜리 파인다이닝과 50만원짜리 호캉스를 놓고 화려한 고민을 하는 대신, 담백한 당신이 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내가 함께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아, 생일 저녁 잘 먹었다!”
후끈해진 몸으로 찬 공기를 덥히며 가게를 걸어 나온다. 사위는 캄캄하다. 우리 얼굴은 밝다. 시장 골목길을 돌아 귀가하는 길,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아직 많다. 나누는 걸음걸음마다 까만 밤하늘에 뽀얀 입김이 생겼다 사라진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즐거운 생일이었다고, 앞으로도 언제고 이 의식을 함께하자고, 서로의 눈을 보며 다시금 이야기하면서.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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