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공계 친구의 푸념이 떠오른다. 왜 제1, 2차 세계대전의 발단 같은 인문학적 교양을 잘 모르면 무식하다 손가락질하면서 열역학 1, 2법칙 등 물리학을 모르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냐는 하소연이었다.
언뜻 수긍이 갔다. 아무래도 정치, 경제, 역사 같은 문과 지식이 상식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쉬운 것은 사실이니 억울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기엔 반대급부가 있다. 이과는 때때로 상식이 빈약하단 오해를 사지만, 이는 그들의 지식이 상식보다는 전문성의 영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일반에 생소한 언어를 쓰다 보니 더 특수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진입장벽이 높은 소위 ‘고급 지식’이라 여겨진다.
반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문과는 어떠한가. 모든 게 상식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정되기 쉽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진다’ ‘소셜 미디어가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 따위의 연구를 해도, 지극히 당연한 얘기처럼 들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한다는 이유로 곡학아세한다는 의심을 받기 일쑤다. 그럴싸한 말장난만 늘어놓는다 오해 받는 문과생의 밥벌이는 그래서 언제나 조금 위태롭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질문과 검증을 거쳐야 하는지를. 물리학 박사이자 사회학자인 던컨 와츠는 그의 저서 『상식의 배반(Everything Is Obvious: Once You Know the Answer)』에서 말한다. 막상 정답을 알고 나면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사실도, 알기 전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누구나 사후적 설명을 떠벌리고 말을 얹을 수는 있지만, 선제적으로 답을 구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더욱이 사회 현상은 물리 법칙처럼 작동하지 않고 변덕이 죽 끓듯 하기 때문에 뻔해 보이는 상식도 결코 당연하지 않다. 전문가일수록 말을 아끼는 이유는, ‘진짜 상식’이 얼마나 드문지 그 무게를 짐작하기 때문일 테다.
하물며 지금 이 시대엔, 상식을 말하는 것 자체가 민감한 일이 됐다. 모두가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정치, 사회 문제는 유독 그렇다. 누구의 상식인가? 2025년 광화문과 용산에서도 목격했듯 같은 시점에도 전혀 다른 목소리가 울리는 지금, 갈가리 찢어진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공통의 지식’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견 차이를 넘어 사실 자체에 대한 합의조차 힘든 ‘탈진실(post-truth)’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미 무엇이 상식인가보다는 무엇을 상식으로 믿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됐다.
그러나 상식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고 해서 상식이 사라져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너와 나 사이에 거대한 강이 흐르고, 문·이과 차이는 우스울 만큼 뿌리 깊은 단절이 있다고 해도 그 강을 건널 다리를 놓으려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줄 진실의 끈을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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