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출도 ‘정치판’”…영화 ‘콘클라베’-원작 소설 비교[선넘는 콘텐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0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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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에서 추기경 단장이 다른 추기경들을 내려다보는 장면. 영화는 추기경들을 하나의 점처럼 묘사한다. 디스테이션 제공


‘붉은 점’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얼굴 모양새나 체형은 알 수 없다. 어떤 피부색을 지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리송하다. 영화는 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가는 성직인 ‘추기경’을 왜 이렇게 보여주는 걸까.

● “가장 신성한 공간, 가장 인간적인 얼굴”…‘점’으로 묘사된 추기경들

5일 국내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추기경을 하나의 점처럼 촬영한다. 추기경은 교황의 최고 고문으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교회 행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하지만 영화는 ‘롱 쇼트’(먼 거리에서 촬영하는 연출 기법)로 이들을 보여준다. 거대한 건축물(바티칸 교황청)과 작은 인간(추기경)을 한 화면에 담는다. 신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는 교황이 선종한 뒤 새 교황을 뽑는 투표인 ‘콘클라베’를 통해 권력과 신념의 본질을 탐구하는 정치 스릴러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각색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전 세계 가톨릭 교도 14억 명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14일부터 입원 중인 상황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소재다.

비밀의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은 ‘열쇠로 잠그는 방’이란 별칭이 있다. 영화에서 시스티나 바닥에 설치된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추기경들은 고개를 바싹 들어 천장화를 바라본다. 천장엔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지창조’(1508년)가 그려져 있다. 추기경 역시 땅에 붙어사는 인간이기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 수밖에 없다. 미학적 연출이 가장 짙게 묻어나는 장면이다.

영화는 언어가 통하는 동향의 추기경끼리 삼삼오오 뭉쳐서 모략을 꾸미는 모습도 관찰한다. 콘클라베가 잠시 중단됐을 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추기경을 비춘다. 가장 신성한 공간에서 가장 인간적인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 “역겨운 인간”…1인칭으로 추기경 비꼰 소설

영화의 이런 장면은 미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가 2016년 펴낸 동명의 원작 장편소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추기경들의 인간적 연악함을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주인공인 추기경 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검소함을 강조한 교황과 권위를 강조한 옛 추기경 원로들의 이견을 묘사할 때 “교황도 인간이기에 원로들이 화려한 공관으로 물러날 때마다 비난의 눈빛을 던지고, 역시 인간이기에 원로들도 교황에게 반발했다”고 말한다. 로렌스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추기경을 향해서는 “역겨운 인간 같으니…”라고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실제로 로렌스의 머리가 지끈거리는 데엔 이유가 있다.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계파 싸움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세 추기경 모두 선거인단 내에 지지파가 있었다. 벨리니는 그레고리오 대학 총장과 밀라노 대주교를 역임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진보주의자들의 위대한 지적 희망이었다. 트람블레는 교황청 사도궁무처장과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동시에 맡고 있기에 제3세계와 관련해 후보 자격이 있었다. 더욱이 미국인처럼 보인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리고 아데예미는 혁명의 가능성을 신성의 불꽃처럼 품고 다니는데, 늘 언론매체의 주목을 받기에 언젠가는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것 같은 인물이다.”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교황이 세상을 떠난 뒤 언론에 사망 사실을 발표하는 방식을 두고 추기경들은 수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교황직이 격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 젊은 추기경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차피 격무입니다. 사람들도 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요.’
트랑블레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벨리니는 시선을 떨구었다. 묘한 긴장감. 로멜리는 잠시 후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교황직이 격무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경우 사람들은 더 젊은 남자가 교황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아데예미는 겨우 60대 초반이며 다른 두 추기경보다 거의 10년이나 젊었다.”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 “주께서 수녀에게도 눈과 귀를 주셨다”…수녀가 비밀 폭로

소설은 남성 추기경들만 주로 비춘다. 반면 여성 수녀들은 잠깐만 언급한다. 예를 들면 빈센트 베니테스라는 새로운 추기경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소설은 “프런트데스크 안에서 수녀 둘이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바쁘게 컴퓨터를 두드려댔다”고만 묘사한다.

소설은 또 앞부분 주요 등장인물(Dramatis Personae)을 따로 표기했다.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을 읽기 쉽기 위한 도움이지만 여기에도 남성들밖에 없다. 벨리니 추기경, 아데예미 추기경, 트랑블레 추기경 등 9명 모두 남성 성직자다.

반면 영화는 여성인 수녀들도 자주 비춘다. 추기경들이 모략을 꾸미는 식당에서 수녀들이 요리하고, 식기를 놓는 장면을 보여준다. 수녀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남성 추기경들의 성 추문과 모함을 폭로하는 장면을 추가해 교회가 남성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콘클라베’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에서 아그네스는 단장 로렌스가 교황의 숙소에 들어간 사실을 변호하고, 여러 추기경의 비밀을 폭로한다.

“물론 수녀회는 눈에 띄지 않아야 하지만 주께서는 우리에게 눈과 귀를 주셨습니다. (로렌스) 단장님께서 성하(교황)의 숙소에 들어가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수녀 한 명이 유감스러운 장면을 보였고 이번 콘클라베의 추기경 한 분을 (성 추문)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서라고 단장님을 의심하고 계셨어요. 그 아이(성 추문 대상인 수녀)는 트랑블레 추기경님의 특별 요청을 받고 왔으니까요.”

영화 막바지, 새 교황이 선출된 뒤 로렌스는 방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본다. 창밖엔 환호하는 군중이나 추기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교황청 주방 뒷문에서 수녀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소설 ‘콘클라베’ 표지.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소설 ‘콘클라베’ 표지.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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