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점’처럼 묘사된 추기경…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선넘는 콘텐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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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영화 ‘콘클라베’-소설 비교
콘클라베 중단때 스마트폰 속으로
인간적 연약함을 간접적으로 묘사
원작과 달리 수녀들도 자주 등장

영화 ‘콘클라베’에서 추기경 단장 ‘로런스’(레이프 파인스·아래)가 다른 추기경들을 내려다보는 장면. 영화는 추기경들을 하나의 점처럼 묘사한다. 디스테이션 제공
영화 ‘콘클라베’에서 추기경 단장 ‘로런스’(레이프 파인스·아래)가 다른 추기경들을 내려다보는 장면. 영화는 추기경들을 하나의 점처럼 묘사한다. 디스테이션 제공
‘붉은 점’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얼굴 모양새나 체형은 알 수 없다. 어떤 피부색을 지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리송하다. 영화는 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가는 성직인 ‘추기경’을 이렇게 보여주는 걸까.

5일 국내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추기경을 하나의 점처럼 촬영한다. 추기경은 교황의 최고 고문으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교회 행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하지만 영화는 ‘롱 숏’(먼 거리에서 촬영하는 연출 기법)으로 이들을 보여준다. 거대한 건축물(바티칸 교황청)과 작은 인간(추기경)을 한 화면에 담는다. 신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영화는 교황이 선종한 뒤 새 교황을 뽑는 투표인 ‘콘클라베’를 통해 권력과 신념의 본질을 탐구하는 정치 스릴러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각색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비밀의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은 ‘열쇠로 잠그는 방’이란 별칭이 있다. 영화에서 시스티나 성당 바닥에 설치된 긴 의자에 앉아 있는 추기경들은 고개를 바싹 들어 천장화를 바라본다. 천장엔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지창조’(1508년)가 그려져 있다. 추기경 역시 땅에 붙어사는 인간이기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 수밖에 없다. 미학적 연출이 가장 짙게 묻어나는 장면이다.

영화는 언어가 통하는 동향의 추기경끼리 삼삼오오 뭉쳐서 모략을 꾸미는 모습도 관찰한다.

콘클라베가 잠시 중단됐을 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추기경을 비춘다. 가장 신성한 공간에서 가장 인간적인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영화의 이런 장면은 미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가 2016년 펴낸 동명의 원작 장편소설(사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추기경들의 인간적 연악함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방식이다. 주인공인 추기경 단장 ‘로런스’(레이프 파인스)는 검소함을 강조한 교황과 권위를 강조한 옛 추기경 원로들의 이견을 묘사할 때 “교황도 인간이기에 원로들이 화려한 공관으로 물러날 때마다 비난의 눈빛을 던지고, 역시 인간이기에 원로들도 교황에게 반발했다”고 말한다.

소설은 남성 추기경들의 암투에만 집중하지만, 영화는 여성인 수녀들도 자주 비춘다. 추기경들이 모략을 꾸미는 식당에서 수녀들이 요리하고, 식기를 놓는 장면을 보여준다. 수녀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남성 추기경들의 성 추문과 모함을 폭로하는 장면을 추가해 교회가 남성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영화 막바지, 새 교황이 선출된 뒤 로런스는 방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본다. 창밖엔 환호하는 군중이나 추기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교황청 주방 뒷문에서 수녀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콘클라베#영화#추기경#권력#신념#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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