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깝고도 먼 나라…“그들에게 우린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3일 13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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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인 선교사 그린 다큐 ‘무명’ 유진주 감독

유진주 감독은 “‘일본은 싫다’라는 감정을 넘어 두 선교사가 보여준 조선을 향한 진심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며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과는 다른, 노리마츠와 오다 선교사의 일본도 있다는 걸 안다면 좀 더 바람직한 양국 간의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저들에게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올해 광복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1908~1980·한국명 전영복)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감독 유진주)’이 최근 개봉됐다. 한국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정서적·역사적 이유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 감독은 동아일보에 “영화를 준비하며 노리마츠, 오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북 고창 오산 교회를 세운 마스토미 야스자에몬, 한국 고아 3000명의 어머니 다우치 지즈코 등 이 땅에서 헌신한 많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이루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1896년 조선에 온 노리마츠 선교사는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다. 유 감독은 “노리마츠 선교사는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박영효로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1895년)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느끼고 조선에 온 걸로 알려졌다”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인인 자신이 대신 속죄하고, 종교적 사랑을 통해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리마츠 선교사가 경기 수원에서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 수원 동신교회다. 노리마츠 선교사의 부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조선인들을 구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식사를 장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 감독은 “자리는 옮겼지만 노리마츠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있다”라며 “당시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존경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다 선교사는 1937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설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까지 받았던 인물.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 2년 뒤 강제 추방됐다. 당시 설교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2021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교육자이자 목회자로 활동한 고 박중학 목사다. 추방된 오다 선교사는 일본에서도 조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일본 이름을 버리고 ‘전영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기도 했다.

이런 활동에 비해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란 특수성 때문에 국내엔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자체 연구가 거의 없었다.

유 감독은 “특히 노리마츠 선교사는 복음만 남길 뿐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라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자식들은 광복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 기록도 없어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

자료 조사도 어려웠지만,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시도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도 ‘왜 우리가 일본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며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라는 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면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작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유진주 감독#일제강점기#일본인 선교사#노리마츠 마사야스#독립운동#오다 나라지#개신교 역사#한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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