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全한족 대표委 만들자”… 임정 소집문건 첫 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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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前 신규식이 안창호에 편지

“전한족대표위원회(全韓族代表委員會)를 조직하여 해당 위원회의 명의로 독립을 선언하고 그리하여 신(新)국가 건설의 최고위원회를 작(作)함이로소이다. … 회집(會集) 지점은 상하이가 가장 적당한가 하나이다.”

15일 8·15광복 80주년을 앞두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자 전한족대표위원회를 조직하자며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을 소집한 문건이 처음 확인됐다. 3·1운동을 약 한 달 앞둔 시점에 임정 구성의 첫 단추가 된 이 문건이 드러나며 독립운동사에서 큰 궁금증 중 하나였던 ‘독립지사들의 상하이 집결’ 이유가 밝혀졌단 평가가 나온다.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 총재 신규식(1879∼1922)이 1919년 2월 8일 미주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도산 안창호(1878∼1938)에게 발송한 통첩(편지)을 대한인국민회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총 7장인 편지는 그해 파리강화회의 개최를 맞아 “신속하고 완전한 전 한족(韓族)의 대동단결”과 함께 “불가불 3월 이내로 전족(全族)위원회가 성립돼야 할 것”이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연구위원은 “신규식은 ‘신국가 건설의 최고위원회’를 ‘한민족을 대표하는 정치적 통일기관’으로 규정했다”며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는 뜻”이라고 했다.

신규식은 “국내와 원동(遠東·극동) 각지의 각 단체에도 동지를 파견했다”고도 알렸다. 이 편지를 보낸 신규식은 상하이에 독립운동 터를 닦은 인물로 당대 독립운동가 가운데 도산과 함께 가장 영향력이 컸으며, 2·8독립선언 등의 막후로 꼽힌다.

“新국가건설 최고위 만들자” 편지받은 도산 “대동단결 ”상하이行
[광복 80주년] 상하이 임시정부 소집 문건 첫 확인
1919년 2월 신규식이 안창호에 편지
“全한민족 대표 조직해 상하이 모이자”… 安 “임시정부 조직했나” 전보 보내
독립지사들 상하이 집결 배경 밝혀… “실제 임정수립 이어져 의미 남달라”
새로 확인된 1919년 2월 독립운동 단체 대표 소집 문건은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이 대동단결해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제안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규식은 안창호에게 보낸 통첩(편지) 형식의 문건에서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1920년 6월)에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각자 대표를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명의와 실질 모두에서 한민족의 단일한 대표를 파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질서를 논의하는 파리강화회의가 우리 민족 독립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 통첩 보낸 신규식, 비밀조직 ‘동제사’ 이끌어

해당 편지는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는 대표의 위상에 대한 제안을 넘어서 임정 수립까지 언급했다. 신규식은 행동의 ‘대강령’으로 “국내의 청년단(일본 유학생 포함)과 기독교 천도교 유림, 국외의 재미대한국민회 러시아고려민족대회 북간도 서간도 한족(韓族)대회 및 베이징 난징 상하이 등지에 있는 각 독립운동 단체가 각각 2, 3인의 대표자를 뽑아 일정한 지점에 회집(會集)하여 전한족대표위원회를 조직해 위원회의 명의로 독립을 선언하고 신(新)국가 건설의 최고위원회를 만든다”고 천명했다.

편지를 보낸 신규식은 대한제국 육군 무관학교 출신으로 국내외 독립운동을 연결하며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과 3·1운동의 발발 등을 막후에서 조정한 거물이다. 이 편지에서 “원동 동포가 대표로 김규식 씨를 파견함을 보며 기쁘고 감사하다”고 한 부분은 다소 능청맞다. 동제사의 청년 그룹으로 하여금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하도록 한 것이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동제사의 비밀스러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발견된 편지는 미주 대한인국민회에 보내진 것이지만, 신규식은 같은 편지를 국내와 서간도·북간도·노령의 주요 독립운동단체와 인사 대부분에게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에는 대동단결의 필요성을 알리며, 방침을 문의하기 위해 국내와 원동(遠東·극동) 지방의 각 단체와 뜻있는 개인에게 이미 동지를 파견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 “대동단결 선언에 필적하는 가치”

학계에선 이 문건이 1917년의 ‘대동단결 선언’에 필적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동단결 선언은 각지의 독립운동이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신규식을 필두로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조소앙 등 14명이 발기해 임정 수립을 위한 민족대회를 소집하자고 제의했던 선언이다. 하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은 “이번에 확인된 통첩은 실제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아직 3·1운동 발발 이전이었지만, 통첩은 효과를 발했다. 편지에 따르면 “원동의 독립운동 단체 2, 3곳이 이런 방안에 이미 동의했고, 다른 단체들도 향응(響應)”하는 상황이었다.

도산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편지는 1919년 2월 중순경 미주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도형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대한인국민회는 2월 24일 임시위원회를 열어 “영구적 해외 한인의 대동단결을 위해 원동에 전권 대표자를 파견”하기로 의결했다. ‘중앙총기관’이 성립하면 대한인국민회는 중앙총회를 해산하고 그 산하에 들어간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도산은 3월 9일 상하이의 현순 목사로부터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이에 도산은 현 목사에게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세계열강에 선언문을 보냈나?(Do organize provisional Government and send declaration to Powers of world?)”라고 묻는 전보를 보냈다. 도산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구성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산은 3월 14일에 “대동단결을 찬성함”이란 전보를 신규식에게 보낸 뒤 상하이로 출발했다.

상하이 임정 구성에 참여한 인물 가운데 상당수가 이 통첩을 받고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연구위원은 “당시 적어도 베이징을 경유해 상하이에 도착한 이시영, 이동녕, 조완구, 김동삼 등은 이 통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편지는 2000년대 미 로스앤젤레스(LA)의 대한인국민회총회관 복원공사 중 천장에서 발견된 문건 6300여 점 가운데 하나다. 이 문건 등은 독립기념관이 2011년과 이듬해 현장 조사를 했으며, 2019년 한국으로 대여돼 독립기념관이 소장해 왔다. 분량이 방대한 탓에 자료를 모두 검토한 김 전 연구위원에 의해 최근에야 편지의 중요성이 파악됐다. 편지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에 공개돼 있다.

신규식은 안창호에게 보낸 것과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하와이의 ‘국민보’와 박용만에게도 보냈고, 해당 편지는 미국 우편검열국이 입수해 영문 발췌 번역본으로 남았다. 번역본과 편지를 확인한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15일 출간 예정인 저서 ‘김규식과 그의 시대’에서 “초기 상해 임시정부 수립과 운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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