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둣빛 풋사랑이 익어가듯… 오감으로 써내려간 ‘어른의 연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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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펴낸 日작가 마쓰이에 마사시
첫 책 ‘여름은…’ 입소문 타고 역주행
편집자로 일하다 54세 늦깎이 데뷔
“사람의 감정 온도를 표현하고 싶어… 가능하면 천천히 마음에 집중해보길”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노래 ‘벚꽃엔딩’처럼, 여름만 되면 역주행하는 소설이 있다.

2016년 국내 출간된 마쓰이에 마사시(松家仁之·67·사진)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주인공. 10년 가까이 됐건만 여름이면 1만 부씩 중쇄를 찍는다. 올해 역시 약 1만 부를 새로 찍으며 ‘여름 제철 소설’의 위상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이 소설은 일본 무명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3만 부가 팔렸다. 소설가 김연수, 김영하, 건축가 유현준 등이 수작으로 꼽으며 입소문을 탄 덕이 크다. 노건축가와 그의 철학을 존경하는 청년의 여름날을 그린 작품으로, 숙련공의 가치가 이울어 가는 시대에 휩쓸리지 않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달 25일엔 마쓰이에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가라앉는 프랜시스’(비채)도 국내 출간됐다. 이를 계기로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 독자들이 ‘여름은…’을 인생 책으로 꼽는 것에 대해 “한국엔 자신이 원하는 걸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는 독자가 많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해외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보니 새삼 소설의 보편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마쓰이에 작가는 와세다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2012년 54세에 데뷔했다. ‘여름은…’을 번역한 김춘미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는 “늦깎이 작가지만, 그의 언어 구사가 앞으로 어디까지 이를지 이렇게 궁금한 작가도 드물 것”이라고 했다.

‘여름은…’이 20대 풋사랑을 그렸다면,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30대 이상 ‘어른의 연애’를 그린 소설. 감정의 밀도와 톤이 확연히 다르다. 신작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면서도 완전히 맞닿지 않는 거리감을 끝내 유지한다. 전작이 연둣빛 여름을 닮았다면, 신간은 새하얀 겨울이 떠오른다.

‘가라앉는 프랜시스’에서 게이코는 도쿄 생활을 청산하고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 우편배달부로 취직한다. 인구 800명 대다수가 노인인 이곳에서 그는 눈이 침침한 수신인을 대신해 편지를 읽어 주고, 말동무도 되어 준다. 그 과정에서 마음 깊은 구석에 빛이 닿는 것을 느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더욱더 민감해지고 경계심이 강화되기도 하죠. 한 사람의 내면에도 ‘감정의 온도’의 차이와 변화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쓰이에 작가는 이런 신작의 키워드로 “눈(雪), 소리, 남녀”를 꼽기도 했다.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문장은 작가가 데뷔작부터 선보인 장기 중 하나. 제도용 연필을 깎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건축사무소 풍경을 “커피를 끓이는 향내처럼, 연필을 깎는 냄새에 아직 어딘가 멍한 머리 심지가 천천히 눈을 뜬다”고 표현했다. 신작에서도 편지봉투가 우체통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 빨간 우편배달차가 하얀 눈을 뒤집어쓰며 나아가는 모습 등을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스쳐 지나가던 감각을 깨우는 표현’에 대해 “주인공은 여행자나 거주자 중에 아직 어느 쪽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미묘한 입장”이라며 “자연환경이나 지역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소화하는’ 한 가지 방법을 권하기도 했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두고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것에 마음을 집중해 보라”였다. 그리고 그때의 읽는 속도는 이렇게.

“가능하다면 천천히, 안단테로.”

#마쓰이에 마사시#여름 제철 소설#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라앉는 프랜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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