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韓직원 붐비던 공장앞 숙소-식료품점 썰렁… 美 지역경제도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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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장 한국인 구금]
‘쇠사슬 체포’ 美 현대차-LG 공장 르포
직원들 끌려간뒤 유령 도시처럼 황량… 공장 건설 언제 재개될지 아무도 몰라
“최대 5000명 관계자들 떠나면… 지역 경기-부동산 시장 침체 우려
문제 빨리 해결돼 손님들 돌아오길”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임시 주차장. 건설 현장에 투입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4일 미 이민당국의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 명이 불시에 체포되면서 빈 차들이 주차장에 방치돼 있었다. 엘라벨=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임시 주차장. 건설 현장에 투입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4일 미 이민당국의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 명이 불시에 체포되면서 빈 차들이 주차장에 방치돼 있었다. 엘라벨=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8일(현지 시간) 찾아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 서울 여의도 4배 크기의 현대차 메타플랜트 부지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진입은 쉽지 않았다. 아직 공사가 다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자갈조차 깔려 있지 않은 진흙 밭을 차로 달려 공장 옆 임시 주차장에 닿을 수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공장 옆으로, 텅 빈 좌석의 자동차들이 수십 대씩 떼지어 서 있었던 것. 4일 미 이민당국의 불법 체류자 단속 당시 끌려간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이 타고 온 차였다. 현장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건물 부지 내 주차장과, 바닥이 정비되지 않은 외부의 임시 주차장이 있었다. 부지 내 주차장에는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외부 임시 주차장에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주로 차를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양쪽 주차장 모두 수십 대의 차가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나흘 만에 ‘유령 도시’로 변한 건설 현장

공장 건설현장 진입 도로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자갈조차 깔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엘라벨=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공장 건설현장 진입 도로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자갈조차 깔려 있지 않은 상태였다. 엘라벨=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한미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각광받았던 이곳은 나흘 전 미 이민당국의 무차별 단속 후 황량한 유령 도시처럼 변해 있었다. 언제 직원들이 돌아올지, 언제 다시 공사가 재개될지 모든 것이 안갯속인 가운데 기업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이민당국은 단속 당시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갖춘 직원들의 귀가를 허용했지만 이날 공장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기업 관계자는 “남아 있는 절반의 직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직원들끼리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있었는데, ‘의미 없다’로 결론이 났다. 그 대신 구금자 신변 수소문이나 짐 정리, 차량 반납 같은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구금된 근로자들을 귀환시키는 데 당장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해결이 더 어려운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문 역량을 갖춘 한국인 직원들 없이 공장 건설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앞으로 약속한 대미 투자를 그대로 진행해도 무방한지, 조지아주 수사당국이 언급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법적 조치는 어떻게 진행될지 등 예상이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모텔-식료품점 등 지역 상권도 위기

미 이민당국의 단속에 멈춰 버린 건 공장뿐만이 아니었다. 메타플랜트 바로 앞에 최근 신축된 모텔 역시 이날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였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 출장자들을 주 고객으로 삼기 위해 세워진 이 모텔은 새 가구 냄새가 채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깔끔한 시설을 갖췄지만 어디서도 투숙객을 마주칠 수 없었다.

주차장에는 모텔 직원들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 서너 대만 서 있었고, 모텔 내부의 수십 개 객실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텔 직원은 “원래 출장자들로 항상 북적이던 곳인데 지난주 목요일 단속 이후 보시다시피 이렇게 됐다”며 “바라건대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고 손님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조만간 구금된 한국인 직원들이 출국하면, 뒷정리를 위해 남아 있는 한국 직원들도 속속 미국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기업 관계자는 “상당수 직원이 신변 불안과 회의감을 호소하며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빨리 돌아오지 않고 뭐하느냐’는 가족들의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한인 동포들 사이에서는 최대 약 5000명 규모로 추산되는 현대차 등 대기업 및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이곳을 떠나면 지역 경기와 부동산 시장 등에 미치는 파괴력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이번 사태로 지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8일 CNN 방송은 엘라벨 인근 상점들의 우려를 상세히 전했다. 현지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새미 랜츠 씨는 “평소 꾸준히 방문하던 한국인들의 발길이 하룻밤 새 뚝 끊겼다”며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면 출근하기가 무서워질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그는 평소 10∼15명이던 한국인 고객이 단속 다음 날인 5일엔 3명으로 줄었다면서 “한국인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사태 뒤 애리조나, 미시간, 오하이오주 등에서 건설 중인 다른 공장들의 작업도 최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 내 전자여행허가제(ESTA) 출장자를 즉시 귀국시키고, 상용비자(B1·B2) 소지자는 숙소 등에 머물도록 조치한 결과다.

#미 이민단속#불법 체류자#한국인 직원#지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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