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근대의 미인은 단지 아름다운 인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의 이상과 시대적 요청을 함축한 구상물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미의식의 변화가 사회상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사진은 1963년도 미스코리아 참가자들. 동아일보DB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트 여자 싱글.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의 대결을 앞두고 언론은 두 선수를 ‘세기의 라이벌’이라 부르며 요모조모 비교했다. 경기력이나 수상 경력 및 필살기는 물론이고, 키가 1cm 차이란 걸 짚은 보도도 있었다. 1990년생 동갑내기로 생일이 20일 차이라는 것조차 주목받았다.
그런데 소셜미디어 등에선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투덕거림도 적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외모를 따지는 게 옳지 않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탓이었겠으나, 두 운동선수를 두고 누가 낫다는 둥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미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건만, 서로가 옳다고 우기는 촌극은 꽤나 격렬했다.
이 책은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가 ‘미인’이라는 여성상이 시대적 가치관과 미의식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해 왔는지를 고찰했다. 대중매체의 등장과 함께 미인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유된 미인에 대한 개념을 서술했는데, 저자는 ‘미인은 당대의 전형적 이데올로기를 몸에 새긴 여성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는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의 물산 장려 운동을 계기로 가속화했다. … 조선 제품의 광고 속 여성 이미지는 일본 도상을 차용하지 않고 조선이 여성을 모델로 한 사실적인 미인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복 차림에 둥글고 납작한 얼굴과 붉게 상기된 두 볼, 외꺼풀의 눈매는 기존의 일본 미인 도안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상으로…”(3장 미인 제조 ‘일본 미인상의 조선적 변용’에서)
일본 여성 이미지가 아닌 조선 미인을 모델로 한 1920년대 경성방직회사의 포스터. 디자인코리아뮤지엄 제공일제강점기 식민 치하에서 일본 제국을 선망하던 분위기는 일본 여성과 일본의 미의식을 동경하는 식민주의적 미의식을 형성했다. 하지만 독립과 반일 감정이 확산하면서 이런 의식이 여성의 외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의식 형성은 일제강점기 근대 조선에서 세 차례 개최된 미인 대회를 통해 서구적 미의식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여성의 신체를 키와 몸무게 등으로 수치화하는 서구적 미의 기준은 외모 지상주의와 여성의 상품화를 불러온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또 다른 맥락도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막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던 초기, 미인임을 공적으로 알리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자기표현 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미인 대회와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2018년 미스 이탈리아 대회에선 수영복 심사에 의족을 착용한 18세 참가자(키아라 보르디)가 등장했다. 어릴 때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는 의족을 드러내며 멋진 경쟁을 펼쳤고, 3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뤄냈다. 보르디의 용기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과 영향을 끼쳤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인 만들기’가 시대적, 사회적 가치와 이념과 연관돼 형성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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