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채부터 분양가상한제-세금 규제
수백억원대 초고급 주택 한때 인기
부동산 침체에 PF조달 실패 늘어
“공매 나오는 사업장 더 늘어날 수도”
1채당 분양가가 최소 200억 원에 달했던 서울 강남구 초고급 주택 ‘포도 바이 펜디 까사’가 이르면 이달 공매 시장에 나온다. 아파트 29채와 오피스텔 6실 규모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펜디의 인테리어 가구 브랜드 ‘펜디 까사’가 인테리어를 맡기로 해 화제가 됐다. 입주자의 직업과 자산 등을 심사해 입주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업 초기 시장의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착공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결국 공매행이 확정된 것이다.
부동산 호황기에 서울 강남권 일대에서 추진됐던 ‘트로피 하우스’(초고급 주택) 사업들이 최근 줄줄이 공매 시장에 나오고 있다. 이런 초고급 주택들은 대개 29채 이하로 지을 계획이었다. 아파트 기준 30채 이상부터 적용되는 분양가상한제 규제와 세금 규제를 피하고, 동시에 희소성을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분양 열기가 식고,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도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진 대단지 선호가 늘면서 이런 전략이 미분양 리스크로 이어진 것이다.
강남구 신사동 일대에 26채 규모로 지으려던 초고급 주택 ‘더 피크 도산’의 착공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계약률이 저조해 본PF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탓이다.
현행 주택법상 강남 같은 투기과열지구에선 민간이 짓는 주택이 30채 이상을 분양하면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이다.
적지 않은 초고급 주택들이 아파트가 아닌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로 짓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도 분양가상한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런 초고급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사업도 표류하는 건 마찬가지다.
강남구 청담동에 오피스텔 12실 규모로 지으려던 ‘청담501’(옛 리카르디 아스턴 청담)이 대표적이다. PF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지난해 공매에 넘어갔다. 최초 감정평가액은 534억8700만 원이었지만 5번이나 공매가 유찰됐다. 최저 입찰가는 370억 원까지 떨어진 뒤에야 간신히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도곡동 일대에 초고급 도시형생활주택을 조성하려던 ‘오떼드오드 도곡’(84실)도 공매 시장에 나왔다. 11번이나 유찰되며 아직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 “공매 사업장 더 늘어날 것”
업계에서는 부동산 호황기 때 초고급 주택 사업이 우후죽순으로 추진된 게 패착이 됐다고 보고 있다. 고액 자산가를 겨냥한 초고급 주택이 흥행하려면 입지 선정부터 내장재까지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조건에 맞지 않은 사업장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초고급 트로피 하우스는 파노라마 한강뷰, 종합병원 접근성, 프라이빗한 시설과 호텔급 서비스 등이 필수적이다”며 “고급 내장재와 명품 브랜드만 입힌다고 흥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PF 부실 사업장 정리가 아직 진행 중이라 공매로 나오는 초고급 주택 사례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기준 금융권에서 매각을 추진 중인 PF 사업장은 총 396곳이다. 이 중 169곳(42.7%)은 아직 입찰 개시도 안 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부실 사례가 쌓이면서 초고급 주택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 사업에서 PF 사업이 실패하면 비슷한 구조의 다른 사업장에 대한 심사를 더욱 보수적으로 할 수도 있다”며 “선행 프로젝트 부실로 인해 ‘회수 압력’이 증가하면 투자 심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