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평가-육성-보상까지 직무 연계, 인사 혁신 추진 나서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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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직무 기반 HR 도입
사업 전략 맞춰 직무 재설계
보상까지 직무-전문성 연계해
조직 내 건전한 경쟁 유도

2025년 2월 롯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HR 전략 워크숍’에서 박두환 롯데지주 HR혁신실장이 롯데그룹의 HR 전략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롯데 제공
2025년 2월 롯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HR 전략 워크숍’에서 박두환 롯데지주 HR혁신실장이 롯데그룹의 HR 전략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롯데 제공
“현행 인사 제도의 한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롯데그룹이 HR(인사관리) 부문에서 업무 효율성과 조직원 만족도 모두를 높이기 위한 혁신에 나섰다. 수년간 지속된 유통·화학 등 그룹 핵심 계열사의 실적 부진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롯데그룹은 초고령사회 대두에 따라 정년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고연령, 고직급 인력의 적체가 심화되는 상황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 기업들이 직면한 장기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현실을 보며 그룹 내 HR 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롯데는 2022년부터 ‘직무 기반 HR’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던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제도를 직무 가치와 구성원의 전문성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직무 기반 HR 제도가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국내 대기업 그룹에서 채용, 평가, 승진, 보상 등 전 HR 영역을 직무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는 사례는 롯데가 유일하다. 롯데에 따르면 올해 28개 계열사가 직무 기반 HR 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까지 완료해 전사적 확산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8월 2호(423호)에 실린 롯데의 직무 기반 HR 혁신 과정을 요약해 소개한다.

● 단계적 접근으로 내재화

롯데는 직무 기반 HR을 전 계열사에 전면 도입하기보다는 우선 도입사를 선정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부 현장에 먼저 적용하며 의견을 수렴해 점차적으로 제도 기반을 조성해 나갈 의도였다. 1차 도입사로 인프라 및 3차 산업 분야의 비교적 신생 계열사인 롯데이노베이트, 대홍기획,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선정했다. 이후 약 1년 간격을 두고 제도를 도입할 2차 도입사에는 식품, 유통, 화학 등 전통 산업 중심의 롯데백화점, 롯데웰푸드, 롯데케미칼 첨단소재부문 등 5개 대형 계열사가 포함됐다. 박종규 뉴욕시립대 경영학과 부교수는 “제도를 완성한 후 구성원을 설득하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계열사 구성원을 포함한 주요 이해관계자와 함께 제도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제도의 실행력과 수용성을 동시에 높였다”고 평가했다.

1∼2차 도입사를 테스트 베드로 확보한 롯데는 가장 먼저 직무 체계를 정비했다. 직무 체계가 직무 및 전문성 평가, 보상 차등화의 기초 단위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머서(Mercer), 언스트앤드영(EY) 같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가 이미 직무 체계 도구를 갖고 있었지만 이를 답습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HR이 비즈니스와 긴밀히 연계되도록 각 계열사의 사업 전략이 반영된 직무 체계를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전략적으로 강화가 필요한 직무는 따로 특화하거나 아예 신설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기술 경쟁력이 사업 전략의 핵심축인 롯데케미칼 첨단소재부문에서는 AI 기획, 기술 영업 직무를 신설하는 등 18개였던 직무를 30개 직무로 세분화했다.

● 직급 폐지·전문성 체계 강화

나아가 롯데는 사업 전략 방향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각 직무 가치를 정량화한 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5개의 잡 레벨(Job Level·JL)을 만들어 각 직무를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는 계열사별로 각사의 전략에 맞게 맞춤화해 직무 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자율 권한을 줬다. 예를 들어 기술이 사업 전략상 핵심 직무인 롯데이노베이트의 경우 AI 기획 직무를 의도적으로 상위 레벨인 JL4에 매칭했다. 이렇게 잡 레벨을 매칭하고 나니 단순한 인사 운영보다 인사 기획이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등 같은 직렬 안에서도 차등이 생기고, 다른 직무와의 가치 비교도 가능하게 됐다.

잡 레벨에 이어 구성원의 전문성과 성장 경로를 5단계로 나눈 ‘L-GL’이라는 롯데형 전문성 수준 체계도 구축했다. 잡 레벨이 고정되는 서구직 직무급제와 달리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단계별 성장 경로를 그려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의도였다. 방호진 제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서구식 직무 기반 HR의 구조를 수용하면서도 동양식 사람 중심 인사의 강점인 성장과 자기 계발의 동기부여 요소를 전략적으로 결합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롯데형 전문성 수준 체계는 전문성을 학습하고 성장하는 단계인 GL1과 GL2, 업무를 리딩하고 성과를 창출하는 고도화 단계인 GL3와 GL4, 전문성을 완성하는 단계로 업계 최고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그룹 내 상위 1% 전문가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위 레벨인 GL5로 구분된다. 롯데는 구성원들의 전문성 수준 체계를 재수립하면서 기존의 수석(차·부장)-책임(과장)-대리 등의 직급 체계도 전면 폐지했다.

● 직무 가치·전문성·성과로 보상 결정

이렇게 평가한 직무 가치, 전문성을 보상 체계에도 반영했다. 직무 가치 평가에 따른 잡 레벨과 개인의 전문성 평가에 따른 GL, 당해 연도 성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보상에 차등을 두는 식으로 설계했다. 기존에는 직급 승진에 따라 보상이 높아지는 형태라 아무리 직무 전문성이 뛰어나도 승진 연한을 채우지 않으면 승진이나 추가 보상이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직급을 폐지한 롯데형 보상 체계에서는 연차와 무관하게 높은 직무 전문성을 갖춘 핵심 인재의 보상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박두환 롯데지주 HR혁신실장은 “롯데형 직무 기반 HR 도입은 단순한 직급 대체나 보상 제도 변경이 아닌 HR의 근본적인 전환”이라며 “구성원들의 불안감 해소와 수용성 확대를 위해 각 계열사는 물론이고 그룹 차원에서도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며 제도를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직무기반HR#인사제도혁신#직무체계#잡레벨#L-G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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