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100만 명이 문 닫는 시대… ‘빠른 데이터’가 소상공인 살린다 [기고/이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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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정책연구실장
이혁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정책연구실장
중소기업 기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상공인 기업 수는 766만 개, 종사자는 1070만 명에 달한다. 그중 50·60대가 57.2%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소상공인실태조사에서는 창업 동기 1위가 ‘자신만의 사업을 직접 경영하고 싶다(62.6%)’로 나타났다. 평균 11.7개월의 준비 끝에 2255만 원의 보증금과 월 109만 원의 임대료를 부담하며 하루 9.3시간, 월 24.5일을 일한다. 머릿속에는 ‘장사가 잘되면 보람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 사업자는 100만8000명으로 1995년 집계 이후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소상공인 위기가 이미 깊숙이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2020∼2022년에는 매출이 연평균 3.4% 증가하며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최근 다시 감소세로 전환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금융이다. 한국은행 가계부채 DB에 따르면 자영업 취약차주 연체율은 2022년 2분기 4.0%에서 2025년 1분기 12.2%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소상공인 정책자금 부실률도 2023년 10.0%로 전년 대비 7.2%p 급등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장기화 속에서 많은 소상공인이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 금리 인하, 대환 대출, 골목상권 육성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전기료·배달료 지원, 부담 경감 크레디트 같은 경영비 절감 정책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연간 100만 명 이상이 폐업하는 현실에서 1∼2년 전 통계를 토대로 한 정책은 현장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시차’다. 통계 발표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현장은 급변하고 지원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당수가 문을 닫은 뒤일 수 있다.

이제는 단순 사후 지원이 아니라 실시간 데이터 기반의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당시 카드 매출과 배달 앱 결제 데이터는 소상공인의 매출 감소와 업종별 위기 강도를 조기에 드러냈다. 특히 일부 외식업에서 현장 매출은 급감했지만 배달 매출은 오히려 성장세로 전환되는 이중적 흐름을 보였다. 이는 ‘빠른 데이터’가 곧 생존 전략 수립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선 전국 소상공인의 매출·고객·비용 구조를 실시간 분석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카드 매출, 상권 유동 인구, 온라인 주문 데이터를 종합해 경영 위험도를 조기에 경고하는 ‘소상공인 경영지수’ 개발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휴업과 폐업 가능성을 미리 진단하는 ‘휴폐업 지수’, 연체율·신용도·이자 보상률·다중 채무를 분석하는 ‘금융지수’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회복 가능성이 낮은 업종·지역에는 집중적인 컨설팅과 비용 지원을, 회복 가능성이 높은 곳에는 디지털 전환과 마케팅을 선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금융지수를 활용하면 한계 소상공인을 조기에 식별해 조기경보·이차보전·채무조정·채권매각 등 맞춤형 지원도 가능하다.

정부 정책은 이제 현장과의 ‘시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민간과 공공이 협업해 카드·금융·휴폐업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설계한다면 위기 발생 전에 지원하는 ‘사전 예방형 정책’이 가능하다. 소상공인은 단순한 경제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지역 상권의 활력, 일자리, 사회적 관계망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그들의 위기는 곧 지역 경제와 국가 경제의 잠재력 저하로 직결된다.

현장의 변화를 즉시 반영하는 ‘빠른 데이터’와 이를 실행하는 정책 속도가 소상공인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한다. 데이터의 경고음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소상공인 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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