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 개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 추진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산재권)을 통합 관리하자는 주장은 개편의 목적과 거리가 멀다. 권리 발생, 정책 목표, 국제 제도의 발전 역사를 보면 근본적으로 다른 양자의 관리를 억지로 통합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큰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과 산재권은 무형의 재산(IP)이라는 점만 같을 뿐이다.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하지만, 특허·상표·디자인 등 산재권은 출원·심사·등록 절차를 거쳐야 성립한다. 국제적으로도 저작권은 베른협약 등 창작자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발전해 온 반면에 산재권은 파리협약 등을 통해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돼 왔다.
한국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특허청이 각기 저작권과 산재권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창작자의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왔고, 동시에 기술과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왔다. 저작권 산업은 한류 확산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K팝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산재권 역시 특허·상표·디자인 출원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기록해 한국이 글로벌 IP 강국임을 입증했다. 이는 분리형 체계에서도 균형 있는 성과를 달성했음을 보여준다. 성격과 지향이 전혀 다른 두 제도를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선진국 대다수가 두 제도를 분리해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P는 국가 주요 정책과 긴밀히 연결되므로 여러 부처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부처 간 조정과 컨트롤타워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이미 2011년 지식재산기본법 제정을 통해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설치돼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정 기능이 부족하다면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 새로운 통합 조직은 ‘옥상옥’에 불과하며, 법적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행정 혼선과 비용만 늘릴 뿐이다. 산업적 효율성에 치우치면 창작자 권리 보호와 표현의 자유가 희생되는 등 정책 목표가 충돌할 위험도 크다.
정부조직 개편은 특정 부처의 권한 확대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IP 정책 추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산재권과 저작권은 뿌리와 열매가 전혀 다른 제도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유행가처럼 반복되는 통합 논의는 불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는 분리와 협력이다. 문화 향상과 기술 발전을 좌우하는 IP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각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이 진정한 IP 강국, K컬처 300조 원 시대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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