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호우’ 적응하려면 ‘물길 정비’가 답이다 [기고/주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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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일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관리이사
주영일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관리이사
지난 7월 경남 산청에는 나흘 동안 8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기록적 폭우였다. 단시간에 집중된 비로 하천이 범람했고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물 폭탄’은 더 이상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의 강우 양상을 보면 시간당 100㎜에 달하는 극한 호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조차 무색해진 지금, ‘기후 대응’에서 ‘기후 적응’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농어촌공사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식량 안보를 위한 물 공급, 즉 이수(利水) 기능이 주로 강조됐다면 이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치수(治水) 기능이 함께 주목받기 때문이다.

공사는 치수 역량 강화를 위해 시기별로 차별화된 대응체계를 운영 중이다. 평상시엔 배수 시설을 점검하고 재해 취약 시설을 관리하며 대비한다. 호우가 예상되면 저수지 수위를 낮춰 물을 담는 공간을 확보하고 재난상황실을 24시간 가동해 비상 태세를 유지한다. 실제 호우가 발생하면 계측 시설과 AI를 활용해 위험을 예측하고 하류부 주민에게 신속히 알려 피해를 줄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수리 시설의 62% 이상이 30년 넘은 노후 시설이고 배수장 설계 용량은 극한 호우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자연의 힘 앞에 기계 동력에 의한 배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들녘에 산재한 배수장이 인근 하천 범람으로 침수돼 전력을 차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배후 유역에서 하천으로 유입된 토사로 인해 하천 바닥이 주변 농지보다 높아져 배수장 효율도 반감시키고 있다. 따라서 시설 보강과 배수 용량 확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하천이 호우를 감당할 수 있도록 통수단면(물길의 단면적)을 확대하는 자연 친화적인 하천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해답은 ‘물길 정비’다. 하천 본류 바닥 정비와 준설을 통해 물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배수장 증설처럼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하천이 물을 흘려보내는 제 기능을 되찾아야만 배수장이 제 몫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 대응은 사후 복구보다 사전 대비가 훨씬 효과적이다. 선제적 투자에는 비용이 따르지만 재난이 남기는 사회·경제적 손실을 고려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국가가 앞장서 강과 하천 그리고 마을로 이어진 물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 극한 강우 속에서도 물이 제 길로 넘침 없이 흐르고 배수장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천을 우선 정비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은 물길을 바로잡는 일에서 시작한다. 안전도, 삶도 결국 물길에 달려 있다. 지금이 바로 물길 정비를 시작할 때다. 조속히 정비가 이뤄져 극한 호우에도 안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공기업감동경영#공기업#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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