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엡스타인에 발목 잡힌 트럼프… 정보 미공개에 MAGA 등 반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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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성매매 체포뒤 극단선택… 성접대 명단 존재 여부 등 논란
‘타살 음모론’ 부추겼던 트럼프… 재집권하자 명단 공개 미온적
존슨 하원의장 등 “정보공개” 주장… 공화당내 분열-대립 가속화 전망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미국 월가의 유명 투자자 제프리 엡스타인(1953∼2019)이 미국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간 엡스타인과 교류했던 각국 유명 인사의 성접대 명단, 즉 ‘엡스타인 파일’이 존재한다거나 그가 타살됐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뒤 집권 공화당 일부 의원과 그의 강성 지지층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투명한 정보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사업가 시절 엡스타인과 가깝게 지냈지만 사업 문제로 충돌한 후 결별했다. 다만 그는 재집권 전 실체가 불분명한 ‘딥스테이트’(Deep state·막후 실세 관료 집단)가 엡스타인 사망 배후에 있다는 ‘타살 음모론’을 부추기며 이를 지지층 결집에 적극 활용했다. 정작 재집권 후에는 줄곧 정보 공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마가 세력의 강한 불만에 직면했다.

특히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 대통령의 차남 에릭의 부인 라라까지 “정보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엡스타인 스캔들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의 분열과 대립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트럼프, 마가 반발에도 정보 공개 주저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워싱턴에서 취재진으로부터 ‘당신 지지자들이 왜 엡스타인 문제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고, (정보 공개) 처리 방식에 분노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들이 왜 그렇게 관심을 갖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루한 이야기(boring stuff)”라며 답을 피했다. 그는 12일에도 트루스소셜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엡스타인에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자. 마가는 한 팀”이라고 썼다.

하지만 7일 법무부가 “엡스타인 사건에 대한 추가 자료 공개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하자 마가 진영은 거세게 반발했다. 11∼13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보수 집회 ‘터닝포인트 USA’ 행사에서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는 엡스타인 사건에 대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음모론자는 입을 다물라는 식의 반응은 충격적”이라고 성토했다.

존슨 의장 또한 15일 보수 팟캐스트 진행자 베니 존슨과의 인터뷰에서 “팸 본디 법무장관이 엡스타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라라도 14일 같은 팟캐스트에 출연해 “백악관이 투명하게 이 사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수사 파일 공개를 주저하고 있다. 과거 친분을 맺었던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공개될 경우 발생할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매매 고객 명단’에 올라 있지 않더라도, 엡스타인 수사 자료에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 지지층이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 트럼프, 지지층 결집에 음모론 활용했다 역풍

엡스타인은 1990∼2000년대 자신의 뉴욕 맨해튼 자택, 플로리다주 팜비치 별장, 카리브해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별장 등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러 여성에게 각종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동생 앤드루 왕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같은 유명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하는 일종의 ‘포주’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키우려 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엡스타인은 2018년 체포됐고 2019년 8월 감옥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또한 엡스타인과 한때 가까운 사이였다.

지지층 결집에 음모론을 적극 활용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후에는 오히려 이로 인한 역풍을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액시오스는 마가 진영이 엡스타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발하는 이유로 “권력층 엘리트가 사회 지도층의 범죄를 은폐했다는 믿음은 반(反)엘리트 정서가 짙은 마가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 정계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트럼프 대통령 또한 결국 기성 정치권과 다를 게 없다는 실망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제프리 엡스타인#엡스타인 파일#MAGA#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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