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시한 D-2]
관세협상 막바지 개입, 파격적 요구
日-EU서 1000억달러 이상 더 받아내
일각 “실제 이행보다 성과 극대화 초점… 기본 틀 합의한 뒤 후속 협의 모색을”
트럼프, 에어포스원에 英총리 초청
영국 스코틀랜드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자신의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잠시 초청해 사진을 같이 찍었다. 두 정상은 이날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과 러시아 제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 등을 논의했다. 사진 출처 미국 백악관 ‘X’
정부가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다음 달 1일) 전까지 관세 협상 타결을 추진하는 가운데 ‘트럼프식 계산법(Trump Math)’이 협상 타결의 최후 관문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유럽연합(EU)과의 협상 막판 투자액을 증액한 전례에 비춰 볼 때 한미 간 실무-고위급 협의를 통해 잠정 합의된 투자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즉석에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존에 마련한 2000억 달러(약 274조 원)의 투자액을 최대 3000억 달러(약 416조 원)까지 증액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액을 제시한 일본과 EU가 미국과 구속력 있는 협정이 아닌 프레임워크(기본 틀)에 합의하고 실제 투자 이행은 후속 협의로 미뤄놓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호관세가 발효되면 일본, EU와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의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대(對)미 투자 카드의 파이를 키워 관세 협상을 타결한 뒤 후속 협의를 통해 ‘윈윈’ 방안을 찾아나가는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 관세 협상 좌우할 ‘트럼프식 계산법’
최근 일본·EU와의 관세 협상 막판에 개입한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대미 투자 금액을 1000억 달러씩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제안서에 줄을 긋고 EU가 제안한 10% 상호관세율을 15%로, 대미 투자 규모는 5000억 달러(약 696조 원)에서 6000억 달러(약 835조 원)로 높였다. 또 미국산 에너지 구매 금액은 6000억 달러에서 7500억 달러(약 1043조 원)로 직접 수정했다. 미일 간 관세 협상 사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제안한 대미 투자액 4000억 달러(약 557조 원)를 5000억 달러로 수정했다. 일본의 대미 투자액은 최종 합의에선 5500억 달러(약 768조 원)로 증액됐다.
이 같은 ‘트럼프식 계산법’은 집권 1기 때부터 자주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실무협상을 통한 합의안을 깨고 파격적인 요구를 내놓으면서 압박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재임 시절 한국과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도 실무 협상단의 잠정 합의안을 뒤집고 방위비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협상 방식은 실제 합의 이행 여부보단 상징적인 숫자를 압박해 정치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 EU 등에선 세부 내용을 두고 여러 이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6000억 달러 대미 투자 선물을 안긴 EU는 “실제 집행은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 기업들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고, 일본 역시 미국에 약속한 5500억 달러가 현금 투자가 아니라 출자와 융자, 융자 보증 등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 대미 투자 확대 방안 고심
정부는 당초 대미 협상에서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기업의 미국 현지 투자와 정책 금융 지원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대미 투자 패키지의 일환으로 25일 진행된 한미 산업장관 협상에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고 이름 붙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정부에 4000억 달러(약 553조 원)의 대미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EU가 미국과 약속한 대미 투자액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부담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대출 및 대출 보증 한도 등을 얼마나 확대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미 투자에서 ‘플러스알파(+α)’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국내 기업이 미국 내에 공장 등을 지을 때 필요한 금액을 직접 대출하는 등의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다. 무역보험공사의 경우 국내 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때 은행이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보증을 더해주거나 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보험으로 완화하는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 금융권을 통한 투자 확대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 시 수출보증을 확대해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법이다. 첨단 산업 투자를 위해 정부가 민관 합동으로 추진 중인 100조 원 펀드를 활용해 국내 혁신기업의 미국 진출을 지원하는 방식도 재계를 중심으로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관합동 첨단산업 100조 원 펀드에는 앞서 금융권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도, 기업도 지금 자금 여력이 떨어져 있는 점이 문제”라며 “국내 투자 여력을 남겨두되 미국 투자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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