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시달렸던 12살 소녀, 트럼프 곁 극우스피커로…“좌파 해고” [트럼피디아]〈41〉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4일 08시 00분


코멘트
2023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뉴저지주 골프장에서 만난 루머와 트럼프 대통령. 사진 출처 로라 루머 X
“당신은 오늘 몇 명의 좌파(leftists)를 해고시켰습니까?”

극우 성향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32)는 12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X에 이같이 올리며 10일 대학교 야외 행사장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청년 우파 논객 찰리 커크(32)의 사망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을 한 사람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머는 “곧 해고될 연방 공무원이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며 칼바람을 예고했다.

● 트럼프 2기 정책 좌우하는 ‘170만’ 인플루언서
유대계인 루머는 반(反)이슬람, 반이민 성향이 강하다. 팔로워가 180만 명에 달하는 소셜미디어 X 계정을 운영하고, 인터넷 방송 활동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 겸 측근으로 루머의 주장이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반영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달에는 루머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의 미국 비자 발급 중단을 촉구한 지 하루 만에 국무부가 가자지구 출신 개인에 대한 모든 방문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올 4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직원 일부가 해고됐을 때도 루머가 입김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머의 영향력이 커지며 기밀 정보를 입수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이달 3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 의원은 국방부 산하 국가지리정보국(NGA)을 방문해 국장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었다. 워너 의원의 방문 일정은 기밀 사항이었다.

그러나 루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X에 이를 공개하며 “NGA는 왜 강경 반트럼프 인사를 초청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틀 뒤 국방부가 해당 일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자 워너 의원은 “반사회적인(trolling) 블로거가 어떻게 기밀 방문 일정을 알았는지 의문”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루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거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가치에 어긋나는 언행을 보인 인물을 자신의 X를 통해 공개 저격하고 있다. 고위급 간부는 물론 일반 공무원, 공직자의 민간인 측근까지 전방위로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커크 사망 뒤에도 연방재난관리청(FEMA) 직원, 테네시주 네슈빌의 911 대원, 트럼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은 ‘성추문 입막음’ 사건을 맡은 후안 머천 판사의 딸과 동업하는 사업가 등이 올린 커크에 대한 부정적 게시글을 자신의 X에 공개했다. 또 “이들의 삶을 망가지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철저한 진영 논리에 따라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지난달 8일에는 미 육군이 한 참전용사를 기리며 올린 게시글을 문제 삼으며 “공화당원이자 미국 태생인 군인만 기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미 육군은 13년 전 같은 날인 2012년 8월 8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던 미 육군 플로랑 그로버그가 자살 폭탄 테러범을 저지해 전우들을 구하고 왼쪽 다리를 크게 다친 사건을 소개했다. 이 사건 이후 그로버그는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루머는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한, 트럼프에 반대하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인물을 기렸다”며 그로버그가 미국 태생이 아닌 프랑스 출신이라는 점까지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에 좌파 인물을 소개한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은 매우 둔감하고 지휘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 하루 14시간 ‘업무’에 전념하는 집요함
1993년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태어난 루머는 불안정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의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생활을 누렸지만 12세에 부모가 이혼한 뒤 이듬해부터 기숙학교에서 지냈다. 루머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섭식 장애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밝혔다.

플로리다주 베리대에 진학한 뒤 졸업을 앞둔 2015년부터 약 2년간 극우 단체 ‘프로젝트베리타스’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인 상태에서 상대에게 불법 활동을 유도한 뒤 이를 폭로하는 방식의 보도로 주목을 받은 단체다. 이곳에서 루머는 베리대 교직원이 이슬람국가(ISIS) 지지 동아리 개설을 적극 만류하지 않았다고 공개하며 주목을 받았다.

노골적으로 반무슬림 성향을 드러내던 루머는 2017년부터 각종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부터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을 이유로 계정을 정지를 당하기 시작했다. 트위터(현 X),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물론 페이팔, 고펀드미 등 모금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서비스에서 쫓겨나며 루머는 스피커와 돈줄을 모두 잃게 됐다. 또 연방 하원의원에 2020, 2022년 두차례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하며 곤경에 처하게 됐다.

그러나 2022년 11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를 인수하며 루머의 운명이 바뀌었다. 인수 직후 루머의 계정을 복원해준 것. 이후 루머는 유력 공화당 대선 주자로 떠오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저격수’를 자처했다. 2023년 2월 디샌티스 주지사의 저서 사인회에서 소동을 일으킨 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처음 전화를 받았다고 NYT 인터뷰에서 밝혔다.

얼마 뒤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로 루머를 초대해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동석해 면담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머를 캠프에 영입하기를 원했으나, 와일스 비서실장 등이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고 CNN 등이 전했다.

지난해 9월 미국 필라델피아주에 착륙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기에서 루머가 내리고 있다. 필라델피아=AP 뉴시스
그러나 결국 루머는 쉬지 않는 전투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약 1년 전인 지난해 9월 미국 대선 TV토론 당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기에서 루머가 내리는 모습이 포착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날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티의 이민자가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고 발언해 큰 논란을 불렀다. 허위 괴담의 뒤에 루머가 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토론회 전날 루머가 X에 올린 게시글 내용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NYT는 루머가 하루에 최소 14시간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다고 보도했다. 루머의 측근 정치 전략가 셰인 코리는 워싱턴포스트(WP)에 루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말 집요한 사람입니다. 이보다 집요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하루 종일 일만 합니다. 헬스장에 가는 시간 빼고는 이 일만 해요. 일 말고 루머의 삶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로라 루머#트럼프#극우#마가#반이민#반이슬람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