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과 면역세포를 생성하는 조혈모세포의 노화 메커니즘과 관련한 연구가 발표됐다. 미국 연구진은 노화된 혈액 줄기세포의 기능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늙은 혈액 줄기세포가 다시 젊은 세포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구진이 세포 내부 ‘청소 시스템’을 조절해 노화된 줄기세포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역노화 연구에 새로운 단서가 제시됐다. 아직 쥐 실험 단계이지만, 면역 노화와 혈액암 위험 증가의 핵심 메커니즘 일부를 되돌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12일(현지 시간)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아이칸 의대 연구진이 노화된 혈액 줄기세포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혈액과 면역세포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HSC·hematopoietic stem cell)에 주목했다. 조혈모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재생 능력이 떨어지고 염증 반응이 증가하는데, 이는 면역력 저하와 감염 취약성, 혈액암 위험 증가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혈액 줄기세포 노화와 함께 암 전 단계로 불리는 ‘클론성 조혈증(clonal hematopoiesis)’ 위험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변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면서 혈액암 발생 가능성을 키우는 현상이다. ● 세포 ‘청소 시스템’ 과부하가 노화 불렀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세포 내부의 ‘리소좀(lysosome)’이었다. 리소좀은 세포 안에서 단백질과 노폐물을 분해·재활용하는 일종의 ‘세포 청소 시스템’ 역할을 한다.
연구 결과 노화된 줄기세포에서는 이 리소좀이 비정상적으로 과활성화되고 산성도 역시 높아진 상태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줄기세포의 대사 균형을 무너뜨리고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특히 늙은 줄기세포에서는 염증 관련 면역 신호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며 혈액 생성 기능도 함께 약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사기 가파리(Saghi Ghaffari) 박사는 “노화된 혈액 줄기세포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 아니었다”며 “리소좀의 과활성 상태와 산성도를 조절하자 줄기세포가 다시 젊고 건강한 상태로 회복됐고, 새로운 혈액·면역세포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늙은 줄기세포, 다시 젊은 세포처럼 기능
연구진은 노화된 쥐의 줄기세포에 리소좀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사용했다. 그 결과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과 혈액 생성 기능이 회복됐고, 염증 관련 신호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실험실에서 처리한 노화 줄기세포를 다시 체내에 이식했을 때 혈액 생성 능력이 기존보다 8배 이상 증가하는 결과도 확인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치료를 받은 노화 줄기세포는 젊은 세포처럼 다시 균형 잡힌 혈액·면역세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건강한 줄기세포 생성 능력도 회복됐다.
세포 에너지 대사를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 기능과 후성유전학(epigenetics) 패턴 역시 개선됐으며, 조직 손상을 유발하는 염증 신호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노화 과정에서 무너졌던 세포 기능 자체를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오래 사는 방법보다, 노화된 세포 기능을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최근 바이오 업계에서는 노화를 하나의 질병처럼 관리하려는 ‘역노화(reverse aging)’ 연구 경쟁이 빠르게 확대되는 분위기다. 실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세포 리프로그래밍과 장수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으며, 면역 노화와 줄기세포 기능 회복은 차세대 바이오 산업 핵심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 “쥐 실험 단계”…인간 적용은 추가 검증 필요
다만 이번 연구는 아직 쥐를 대상으로 한 기초 연구 단계다. 실제 인간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타날지는 추가 연구와 임상 검증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향후 리소좀 기능 이상이 혈액암 발생 과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인간 줄기세포에서도 동일한 회복 효과가 나타나는지 등을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파리 박사는 “노화된 줄기세포를 건강한 상태로 되돌릴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고령층 면역 기능 유지와 노화 관련 혈액 질환 치료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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