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치매 환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었다. 이제 치매는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넘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과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전국 2만여 개 치과 중 치매 환자 진료가 가능한 곳은 불과 30여 곳(0.2%)에 그친다. 장애인 치과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이유는 명확하다. 치매환자는 행동 조절이 어렵고 치료에 비협조적이다. 고령에 여러 전신질환을 가지고 있어 치료 중 사고 위험성이 높다. 하지만 치과 건강보험 수가는 일반 환자와 동일하다.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매 환자들은 제도적 지원 없이 방치되고 있다. 민간이 나서기 어려운 구조다.
위험 부담만 떠안고 아무런 보상이나 보호도 받지 못하니 아무리 사명감이 있는 치과의사라 해도 진료를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재 진료 중인 소수 치과들 역시 사실상 의료인의 희생으로 버티고 있다.
치매 환자의 구강 관리는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다. 구강 질환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저작·삼킴 기능이 무너지면 단백질 섭취가 어려워져 근감소증, 영양실조, 흡인성 폐렴 등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치료를 받을 곳이 없어 아픈 치아 하나 뽑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전전해야 한다. 입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지고, 돌봄은 연명으로 전락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치매정책 어디에도 ‘구강’은 없다. 4차에 걸친 치매 종합관리계획 모두 치과 진료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았다. 치과의사는 치매 필수인력에서조차 빠져 있고, 방문 치과 진료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모든 부담이 가족에게 전가된 채 방치되고 있다.
일본은 40년 전부터 방문 치과 진료를 제도화하며, 치과의사를 치매 조기 발견과 케어의 핵심 인력으로 포함했다. 구강건강과 치매의 상관관계는 이미 학술적으로도 명확하다. 자연치아 20개 이상을 보유한 노인이 10개 미만보다 치매 발생률이 낮다는 연구(Shimazaki, 2001년)와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치주염 균이 다량 검출된 연구(Dominy,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019년) 등이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민간 선의만으론 부족하다. 정부의 제도적 개입이 절실하다. △공공치과병원 설립 △방문 치과 진료 제도화 △치매 환자 전용 수가 신설 △치과의료인 대상 치매 전문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수립 중인 ‘제5차 치매 종합관리계획’에 ‘구강건강’ 항목이 꼭 포함돼야 한다. 구강은 돌봄의 출발점이다. 입을 닫으면 건강이 무너지고, 돌봄의 문도 닫힌다. 치매 환자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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