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이따금 종합 예술이라고 불리웁니다. 특정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콘텐츠들이 전부 합쳐진 ‘융복합 콘텐츠’이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특정 콘텐츠 장르가 강하게 접목된 형태의 게임들도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일례로 비주얼과 서사에 강한 게임은 ‘인터랙티브 북’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기도 하고, VR 키트를 쓰고 1대1로 서로 겨루는 게임은 실제 태권도 경기처럼 엄청난 현실감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치열한 전략으로 겨루는 전략 시뮬레이션(RTS) 장르의 경우는 e스포츠 문화로 발전하는 등 게임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변화하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거리고 있으니, 게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러한 여러 게임 진화의 줄기 중에서, 유독 음악에 치중된 게임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게임을 즐길 때 비주얼, 즉 그래픽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를 받지만, 귀를 통해 들리는 사운드 또한 각별한 의미를 남기는 경우가 많이 있죠. 눈에 비치는 영상보다 귀로 듣는 사운드가 더 특별해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강렬한 선율에 몸을 맡기는 리듬 게임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리듬 게임이 존재합니다. 듣기만 해도 시원시원하고 경쾌한 음악에 저절로 몸이 꿈틀거리게 되는 경험, 리듬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공감하는 일일 것입니다. 영화로 따지면 특정 OST나 배경 음악을 거리에서 들었을 때, 영화의 명장면이 연상되는 정도의 감각이 되겠지요.
리듬게임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코나미
이러한 리듬 게임의 시초가 되는 게임이 바로 1997년도에 코나미에서 내놓은 ‘비트매니아(beatmania)’입니다. 이 게임의 룰은 단순합니다. 위에서 5개의 건반이 떨어져 내려오는데, 이 건반이 화면 아래에 있는 기준 선에 닿는 순간에 타이밍에 맞게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타이밍을 잘 맞추면 반짝이는 GREAT, GREAT, GOOD, BAD, POOR의 5가지로 판정을 받게 되고, 이 판정을 얼마나 잘 받았느냐에 따라 더 높은 점수를 얻고 일종의 체력 게이지 같은 ‘그루브’ 게이지를 높여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계속 실패하면 ‘그루브’ 게이지가 내려가면서 게임이 끝나게 되었구요.
비트매니아 시리즈의 최신작 ‘IIDX 23 copula’. 코나미 공식 홈페이지 발췌 여기에 ‘비트매니아’를 개발한 코나미는 단순히 버튼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에 또 턴테이블을 돌리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오락실에 500원 정도의 동전을 집어 넣은 후, 흡사 클럽의 DJ가 된 것처럼 흥겹게 ‘비트매니아’의 세계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생전 처음보는 형태의 게임에, 처음엔 ‘이게 뭐야?’라며 반신반의했던 오락실 이용자들은 ‘비트매니아’에서 주로 다뤘던 트랜스, 유로비트, 하드코어 테크노 등의 강렬한 음악과 비트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동전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강렬한 비트를 자랑한 비트매니아 시리즈. 사진은 IIDX 16 EMPRESS 스크린샷 / 코나미 공식 홈페이지 발췌 국내만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비트매니아’는 한국 일본을 비롯하여 원래부터 춤과 화려한 음악에 북미와 남미 지역 플레이어들을 강타했습니다. 당시에 오락실 매출 순위가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 시기였지만, 전세계 게임센터가 ‘비트매니아’ 때문에 들썩거리는 시절이었고 빠르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가 자리잡게 되었죠.
그리고 또 한 번 리듬 게임업계에 엄청난 반향이 몰려왔습니다. 코나미에서는 ‘비트매니아’의 새로운 시리즈를 꾸준히 내며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 연장선상으로 내놓은 ‘DDR(댄스댄스 레볼루션)’이 어마어마한 히트를 친 것입니다. 그동안의 리듬 게임은 가만히 서서 건반을 누르는 형태였다면, DDR은 형태는 비슷하되 건반이 아니라 발로 발판을 누르는 형태였습니다.
코나미의 댄스댄스레볼루션A(좌측)과 안다미로의 ‘펌프잇업 피닉스. 각 공식 홈페이지 발췌 타이밍에 맞춰 발판을 누르면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시스템에, 또 한 번 세계가 열광했습니다. 전세계가 들썩거렸고, 코나미는 그야말로 기세등등해졌습니다. 그 당시에 세가는 전세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리듬 게임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당시 꽤 많은 세가 아케이드 게임점이 망할 위기에 몰렸다고 하니 당시 리듬 게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듬 게임의 세계적인 인기는, 다양한 아류 게임들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게임이 국내 게임 개발사 안다미로에서 만든 ‘펌프잇업’ 시리즈 입니다. 코나미의 ‘DDR’이 상하좌우 발판을 이용했다면, ‘펌프잇업’은 대각선으로 화살표를 누르게 개발되었고 추가로 다양한 K팝 가요가 접목되었죠.
그 결과 ‘펌프잇업’은 국내에서의 코나미의 리듬 게임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런 인기에 힘입어 전국에 PC방 같은 개념의 ‘펌프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아예 방송사에서 퍼포먼스를 겨루는 ‘펌프잇업’ 전국대회가 열리기도 했죠. 젊은이들이 가득한 거리는 온종일 ‘펌프잇업’의 음악과 춤추는 이들로 뒤덮였습니다.
심지어 국내에서 충분한 인기를 얻다가 신작에 밀려 구형이 된 ‘펌프잇업’이 중남미로 수출되어 뒤늦게 한류붐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죠.
태고의 달인 쿵딱쿵딱 시공의대모험편. 다양한 리듬 게임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 사진 제공: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지금은 어떨까요? 코나미의 독특한 발상으로 시작된 리듬 게임 장르는 2000년대부터 다양한 게임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기타를 활용한 방식, 키보드를 활용한 방식, 드럼을 활용한 방식, 북을 치는 방식 등 엄청나게 풍부해졌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 엑스박스 할 것없이 다양한 리듬게임들이 지금도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즐거운 음악과 함께 즐기는 리듬 게임, 앞으로 또 어떤 형태의 게임이 등장해서 우리를 기쁘게할지 매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