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위암 조기 진단과 치료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가 차원 내시경 검진 프로그램은 조기 진단율을 높였고 고난도 내시경 절제술(ESD)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힌다. 위암 환자 절반 이상이 조기 단계에서 발견되며, 5년 생존율은 76%를 웃돈다. 이 모든 성과는 정교한 국가 검진 시스템과 숙련된 의료진이 만들어낸 결과다.
하지만 눈부신 진전에도 불구하고, ‘예방’이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 pylori)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분명히 1군 발암 인자로 지정한 세균이다. 일본은 이미 수년 전부터 헬리코박터 감염에 대한 스크리닝과 제균 치료를 제도화하며 위암 발생률 자체를 낮추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내시경 검진 도중 병변이 발견돼도 헬리코박터 감염 여부 확인이나 제균 치료로 이어지는 흐름이 아직 일관되지 않다. 건강보험 기준 역시 예방적 제균 치료에 제약이 있어, 감염을 방치하는 일이 흔하다.
최근 건강 지표를 보면 한국은 위암 사망률은 낮아졌지만, 삶의 질 저하를 의미하는 ‘질병으로 인한 장애 연수(YLD)’는 여전히 높다. 조기에 진단되고 치료된 환자들조차 위 절제 이후 소화 장애, 체중 감소, 음식 회피 같은 불편 속에 살아간다. 다시 말해, 병을 빨리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암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것이 가장 현명한 전략이다.
이런 생각은 진료 현장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소화기내과 전문의로 일하며, 뉴욕에서 수많은 한국계 환자들을 만났다. 30년 전만 해도 헬리코박터 감염은 거의 흔한 진단이었지만, 지금은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최근에도 헬리코박터 양성 환자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고, 그들 대부분은 한국을 방문했거나 한국 기업 파견으로 미국에 온 사람들이다.
놀라운 건, 한국이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검진을 지원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헬리코박터 감염이 여전히 흔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내시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감염 여부를 조기에 확인하고, 제균 치료까지 연결되는 구조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많은 사람이 제균 치료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기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치료를 미루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헬리코박터는 비교적 간단한 치료로 제거가 가능하고, 그 예방 효과는 크다. 일본은 제균 치료의 예방적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 정책으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나은 접근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자랑하는 진단·치료 역량을 넘어서, 헬리코박터 감염 예방과 제균 치료를 국가 차원의 전략으로 정착시켜야 할 때다.
이 글이 독자에게 위암 예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의료 현장에서 직접 느낀 문제의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정책을 바꾸는 작은 움직임이 되기를 희망한다. 예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중요성을 제대로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절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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