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5개월여가 지나서야 주요 물증들이 하나둘 확보되고 있다. 그만큼 내란 실체 규명이 지체되고 있는 데다, 일부 증거는 이미 삭제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진상 자체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찰은 최근 대통령경호처로부터 비화폰 서버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하는 과정에서 계엄 당시 상황과 관련된 정보가 삭제된 정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6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고 했다’고 증언한 뒤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비화폰 내역이 삭제됐다는 것이다. 누군가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의심된다.
계엄 국무회의가 진행된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 영상도 최근에야 경호처가 경찰에 제출했다. 화면을 분석한 결과 ‘사전에 계엄을 몰랐고 당일 계엄 관련 문건을 못 봤다’고 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의 기존 진술과 배치되는 정황이 발견돼 이들을 출국금지했다. 경찰은 계엄 선포 직전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과 만난 서울 삼청동 안가의 CCTV 영상 제출도 경호처와 협의 중이다. 모두 수사 초기에 확보했어야 할 기본적인 자료들이다.
경호처는 그동안 군사상 보안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6차례나 거부했고, 경찰이 신청한 안가 CCTV 압수수색영장은 검찰이 반려해 증거 확보가 늦어졌다. 이렇다 보니 관련자 진술 위주로 윤 전 대통령 등을 기소했고, 재판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연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또 계엄을 선포한 진짜 이유가 뭔지,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려 했다는 ‘노상원 수첩’은 실체가 있는 것인지, 계엄 이후 비상입법기구를 만들려 했는지 등 풀어야 할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몇 명을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국격은 추락했고 정치·경제·사회적 충격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부터 신속하고 엄격하게 수사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어수선한 탄핵 정국 와중에 지지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비상계엄의 계획부터 준비와 실행은 물론이고 증거인멸 의혹까지 빠짐없이 밝혀내 누구도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경계(警戒)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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