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주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 연설에서 ‘실제적이고 임박한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도 국방비를 신속하게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올리기로 약속했다며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이 훨씬 더 강력한 (중국발) 위협에 직면하고도 (나토 회원국보다) 국방비를 덜 쓰는” 상황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헤그세스 장관의 요구는 직설적이었다. 그는 “동맹과 우방이 제 역할을 하기를 우리는 요청, 아니 강력히 주장한다”며 “그것은 때론 불편하고 거친 대화를 의미한다”고도 했다. 앞으로 아시아 각국에 방위비 증액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관철할 방침임을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많은 나라가 중국과 경제협력을, 미국과 안보협력을 동시에 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을 안다”며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미중 간 줄타기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도 던졌다.
헤그세스 장관은 나토의 GDP 5% 증액 약속 외에 아시아 각국에 대한 국방비 목표치를 제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관계자들은 대만에는 GDP의 10%, 일본에는 3%를 공공연히 요구해 왔다. 대만과 일본이 GDP 3%와 2%로 각자 목표를 정하고 증액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같은 미국 요구엔 크게 못 미친다. GDP 2.6%를 국방비로 쓰는 한국은 아직 미국 측의 구체적 요구를 받지는 않았지만 예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한국은 그 못지않게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인상 압박에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북 방어에서 중국 억제로 전환하는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에 직면한 상태다. 얼마 전 주한미군 4500명 감축설을 부인했던 미 국방부에선 “감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다시 나온다. 주한미군의 규모·역할이 조정되면 한국군은 더 큰 대북 방위 책임을 지게 되고 굳이 미국의 증액 요구가 없더라도 우리로선 국방비를 대폭 늘릴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앞엔 미국과의 관세 협상보다 만만치 않은 동맹 간 협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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