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이 발주한 국가안보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의 명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우리 조선업체들이 미국 군함을 한국에서 건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군 함정은 미국 내에서, 미국 업체만 만들도록 돼 있는 법을 우회할 방법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양국 정상이 합의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면서 한미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 해군부는 미국 군함이나 선체, 구성품을 해외에서 건조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번스-톨레프슨 법’을 완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올해 안에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미국 내 항구 간 화물 운송에 미국산 선박만 사용하도록 한 ‘존스법’과 함께 한미 조선업 협력의 걸림돌이 되는 양대 규제 중 하나다. 미국 의회에서 이런 규제를 완화할 법안들이 이미 발의됐지만, 통과 여부나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만큼 한시적인 행정명령을 통해 이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명령이 시행될 경우 군함 건조용 대형 블록과 모듈, 빈 선체 등을 한국에서 만든 뒤 한국 기업이 인수했거나, 협력하는 미국 현지의 조선소로 보내 조립·완성할 수 있게 된다. 미국 내 조선업 생태계가 붕괴돼 독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미 분업을 통해 군함 건조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 정부가 이런 지름길까지 검토하는 이유는 숫자 면에서 중국에 뒤처진 해군력의 증강이 그만큼 급하기 때문이다. 현재 296척인 함정 수를 2054년까지 381척으로 늘리는 게 미 해군의 목표다. 노후해 퇴역하는 배를 고려하면 30년간 300척이 넘는 군함을 새로 건조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생산한 배가 37척에 불과한 미국 조선업의 현실을 고려할 때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조선강국, 한국의 지원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인텔 등 반도체 업체들 다음으로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핵심 산업으로 조선업을 지목했다. 조선업 부활을 위한 투자는 한국이 하고, 주도권은 미국이 챙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한국이 1500억 달러(약 210조 원)를 투자하는 마스가는 향후 수십 년간 양국 경제·안보 협력의 주춧돌이 될 프로젝트다. 한미 모두의 국가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미국 측에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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