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 조희대 대법원장. 이훈구 기자 ufo@donga.com.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자 대통령실이 15일 그 이유엔 공감한다는 취지로 반응해 논란에 휩싸였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조 대법원장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를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전날 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조 대법원장 사퇴를 주장한 데 대한 견해를 묻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강 대변인은 발언 1시간여 뒤 ‘사퇴 관련 특별한 입장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재차 설명을 내놓으며 최초 발언의 취지가 오독(誤讀)됐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한발 물러섰지만, 여당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조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총공세에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조 대법원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어겼다며 물러나라고 했고,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대법원이 5월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직후 들고나온 조 대법원장 탄핵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헌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대법원장에 대해 여당이 합당한 사유 없이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부당하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 사건의 파기 환송을 주도하며 대선에 개입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에 대해서도 재판 지연과 편향성을 문제 삼고 있다. 현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대한 불안감도 여당이 사법부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는 배경 중의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당 뜻대로 조 대법원장이 물러나면 이 대통령은 새 대법원장을 임명하게 된다. 여기에 여당은 1년 유예를 거쳐 대법관을 향후 3년간 4명씩 총 12명을 늘리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은 2030년 3월까지 임기가 종료되는 대법관 10명을 포함해 22명을 자신의 임기 중에 임명하게 된다. 현재 중도 성향 10명, 보수 성향 2명, 진보 성향 2명으로 분류되는 대법관의 구성은 진보 일색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절반이 훨씬 넘는 166석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여당이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진보세력이 대법원까지 장악하게 되면 사실상 한 정파가 입법-행정-사법을 한 손에 틀어쥐게 된다. 한 정파에 권력이 이처럼 집중된 적은 근래 거의 없었다. 사법권은 행정권과 입법권의 일탈과 남용을 제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 보루다. 사법권과 입법-행정권의 일체화는 이 같은 삼권분립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민주주의 기초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여권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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