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확신과 무지는 동전의 양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4일 0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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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와 일전을 치르고 있는 하버드대의 졸업식. 연단에 오른 앨런 가버 총장은 “절대적 확신과 의도적 무지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그 동전은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헤아릴 수 없는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 미국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절대적 확신을 갖고, 유학생과 이민자들이 미국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해왔는지 모른 척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잘못된 확신은 진정한 잠재력을 앗아간다”고도 했다.

▷맹목적 확신에 빠진 사람은 현실을 자신의 믿음에 맞게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다. 확증 편향의 덫에 그렇게 빠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유학생 비자 발급을 중단하면서 “미 명문대에 유학생이 너무 많아 미국 학생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를 댄 것도 미중 경쟁에서 고전하는 현 상황의 핑계를 엉뚱한 데서 찾은 것이다. 가버 총장은 “세상은 ‘편안한 사고’를 하라고 우리를 유혹한다”는 말로 이 문제를 꼬집었다. “자신의 가정은 정당하고, 주장은 진실하며, 의견과 관점은 타당하다고 쉽게 믿게 만드는 사고의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개방성이 무너지면 ‘편안한 사고’에 잠식되기 쉽다. 하버드대를 포함한 미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에게 포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번영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최고의 인재들이 자유롭고 차별 없는 연구 환경에서 혁신을 일궈낸 결과인데 이 성공 모델이 ‘반유대주의’를 명분 삼은 트럼프의 횡포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하버드대는 트럼프의 연방 자금 지원 중단에 이은 외국인 유학생 등록 금지 결정을 막아달라며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외국인 유학생이 없는 하버드대는 하버드가 아니다’라고 썼다. 미국 역사보다 오래된 하버드대가 미국의 퇴행을 막는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절대적 확신과 의도적 무지는 실패하는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나만 옳다는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실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겸손, 공감, 관대함, 통찰을 잃고 만다”는 가버 총장의 말대로 더 좋은 리더가 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셈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라는 정치적 폭주를 감행한 것도 그런 사례다.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밖엔 답이 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자신의 실정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 대해선 애써 귀를 닫은 결과였다. 그런 지도자를 겪고 나서 치른 이번 대선 역시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얼룩졌다. 반성과 성찰 없는 확신의 정치를 멈춰 세우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몸살을 앓게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하버드대#유학생 비자#확증 편향#편안한 사고#공동체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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