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8일, 20년간 부패 방지 업무를 담당했던 국민권익위원회 김모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권익위가 김건희 여사의 디올 명품백, 이른바 ‘그 쪼만한 백’ 수수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를 제재할 법적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준 지 두 달 만이었다. 당시 이 사건의 실무자였던 그는 “부패 방지에 한평생을 바쳐 온 과거가 부정당했다”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유족들이 그의 죽음 1주기를 앞두고 카카오톡에 남긴 유서 형식의 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가 카카오톡에 ‘김OO 남기는 글입니다’라는 대화방을 만든 건 숨지기 9일 전인 지난해 7월 30일이었다. 전날부터 전국을 돌며 식사비 한도를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간담회를 갖던 중이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담당했던 업무였다. 이 간담회를 두고 ‘가방 건의 여파가 크다’고 적었는데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그가 어떤 항의를 들었을지, 어떤 자괴감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메시지다. 8월 2일에는 ‘지난 20년간 만든 제도를 제 손으로 망가뜨릴 줄이야’, ‘법과 논리의 무게보다 양심의 무게가 크다는 교훈을 공직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사망 하루 전인 8월 7일에는 6개의 메시지를 잇달아 남겼다. “제 잘못은 목숨으로 치르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뿐”이라며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평생을 바친 소신이 무너졌다는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되는 메시지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 “어쭙잖은 정의감과 무능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며 자책했다.
▷그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김 여사 사건의 수사기관 이첩을 주장했지만 윗선에서 종결 처리를 밀어붙였다며 “실망을 드려 송구하다”고 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원래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라 이 결정에 대한 비판과 조롱을 힘들어했다고 증언했고, 가족들은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갈등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지휘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였던 위원장, 후배였던 부위원장 등은 외압은 없었다며 그의 죽음을 덮기에 급급했다.
▷물이 더러워지면 살 수 없는 산천어처럼, 양심에 어긋난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이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만큼 도덕적 잣대가 오염된 사회란 뜻일 것이다.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가진 자와 권력자에겐 더 엄격하고, 약자에겐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률의 적용이 필요하다.” 그의 마지막 항변이자 당부였다. 유서가 공개된 6일, ‘그 쪼만한 백’을 받은 김 여사가 특검 조사에 출석하며 포토 라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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