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의 밤, 국정 2인자였던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의 행적에는 모호한 대목이 많다. 그는 계엄 포고령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고, 계엄 선포문은 “계엄 해제 후 사무실로 출근해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가 열린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과 복도 폐쇄회로(CC)TV에 담긴 영상에는 해명과 다른 게 여럿 있었다.
▷특검 설명에 따르면 영상에서 한 전 총리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참석 인원을 세는 듯했다. 김 전 장관이 손가락으로 넷과 하나를 표시했는데, 특검은 국무회의 정족수까지 “4명 남았다”, “이제 1명 남았다”는 대화 장면으로 해석했다. 한 전 총리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해 국무회의 참석을 독촉했다고 한다. 그날 밤 국무회의가 끝나자 한 전 총리는 “회의 참석 의미로 서명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며 장관들에게 계엄 선포문 서명까지 권했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이 계엄에 반대하며 문건을 회의실에 두고 나가자, 한 전 총리가 이를 직접 수거하는 장면도 CCTV에 찍혔다. 그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단둘이 남아 16분 동안 계엄 관련 문건을 검토했다. 이 포고령에는 국회 폐쇄, 정치활동 전면 금지, 언론·출판 통제, 전공의 처단 등 듣기만 해도 수용할 수 없는 위헌·위법적 내용이 다수 적혀 있었다. 계엄 선포 전인 오후 8시경 대통령 집무실에서 포고령을 가장 빨리 받은 사람도 그였다.
▷12월 4일 오전 1시 2분 국회는 계엄 해제를 가결했다. 한 전 총리는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했어야 하지만, 소집을 건의하지 않았다. 국무조정실장이 “계엄을 해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한 전 총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다리라”며 시간을 끌었다. 야당은 이런 시간 끌기를 추가 계엄 가능성 모색 아니냐는 의심을 해 왔다. 결국 계엄 해제 국무회의는 오전 4시 27분에 열렸다. 선포는 재촉하고 해제는 지연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결국 불법 비상계엄에 절차적 정당성을 보탠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경제부총리, 주미 대사, 두 번의 국무총리를 거친 50년 관료다. 50년 공직 본능일까. 그는 위헌적 계엄에 제동을 걸기보다는 절차를 따르는 쪽을 택했다. 기억이 없다며 얼버무렸던 해명도 특검이 CCTV를 들이민 뒤에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선포문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2022년 5월 국회 인준 직후 “책임 총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던 그였다. 불법 계엄의 밤, 대통령의 폭주를 막을 ‘최고 헌법기관’인 그에게서 책임지는 모습은 끝내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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