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택동]특검도 사법적 통제의 예외일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8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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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논설위원
장택동 논설위원
독일의 헌법인 기본법엔 ‘누구든지 법률이 정한 판사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상 ‘헌법과 법률이 정한 판사에게 재판받을 권리’와 유사하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놓고 “개별 사건에 관해 재판할 판사를 선임함으로써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쪽으로부터 행해지는가에 관계없이 회피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래야 “사법의 독립”이 지켜지고 “공공의 신뢰가 달성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어떤 판사가 재판을 담당하게 하느냐, 즉 ‘배당’은 사법부 독립의 가장 기본적 요소다. 그래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통한 무작위 배당 원칙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그런데 근래 더불어민주당에서 거론되는 특별재판부(특판) 제도는 특검의 영장 청구와 기소를 특판에서 전담하는 것으로, 사건 배당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 지난달 말 특검이 청구한 드론작전사령관과 전 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게 특판 도입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특검 영장 기각에 與 “특판 도입해야”

민주당 의원 115명이 참여해 발의한 특판 도입 법안의 뼈대는 9명으로 구성되는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영장전담판사 및 1, 2심을 담당할 판사 후보를 2배수로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이다. 국회 몫 추천위원 3명은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을 제외한 교섭단체와 의석수가 가장 많은 비교섭단체가 협의해서 정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배제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추후 국민의힘만 빠지도록 수정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 측의 설명이다. 결국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특판 인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구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판사들이 내란 척결의 걸림돌이 되면 특검처럼 특판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특판과 특검 도입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공격수 격인 검찰에 비해 심판 역할을 하는 법원에는 더욱 엄격한 중립성이 요구된다. 헌법에도 수사권의 주체에 대해선 별도의 언급이 없는 반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돼 있고, 판사의 독립성을 명시한 조항도 있다. 그런 만큼 예외를 두는 데에도 훨씬 신중해야 한다.

민주당에선 특판 도입론의 한 근거로 ‘과거 특판이 운용된 전례가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1948년 반민족행위 특별재판부, 1960년 3·15 부정선거 특별재판소가 구성된 적이 있지만 이는 당시 헌법에 적시된 부칙을 근거로 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특판 설치가 현행 헌법에는 위배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판이 재판을 진행했다가 혹여라도 훗날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정석대로 해야 논란의 빌미 없을 것

특검 수사의 궁극적 목적은 비상계엄 사태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에서 해소되지 않은 굵직한 의혹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음으로써 잔재를 청산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사법 절차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의 빌미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이 개입해 특검이 청구하는 그대로 영장을 내줄 만한 재판부를 만든다는 건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되짚어 보면 법원은 김건희 특검이 청구한 ‘집사 게이트’ 관련 압수수색영장은 기각했지만 이후 이 사건의 핵심 인물에 대한 체포영장은 발부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특검의 체포영장도 한 차례 기각했지만 보름 뒤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이처럼 정상적으로 법원의 사법적 통제를 거치면서 혐의를 다지고 수사의 완결성을 높여나가면 된다. 정석대로 하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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