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마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다. 문 정부를 ‘가짜 일자리 정부’로 칭한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경제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노동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의도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고용주 역할을 자임했던 문 정부는 단기 일자리와 공공 일자리만 만들다 끝났고, 윤 정부는 구체적 실행 없이 노동 개혁 구호만 되풀이하다 마쳤다.
정부 핵심 정책에서 사라진 ‘고용’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인지 현 정부와 여당의 일자리 접근법은 다르다. 일자리 창출 목표를 강하게 내걸지 않고 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관심은 일자리 지표가 아니라 주식 시세표에만 쏠려 있다. 지난달 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강화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의기양양하던 여당 내에서 처음으로 ‘정책 재검토’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1분기 일자리 증가 폭 역대 최소’, ‘그냥 쉰 청년 역대 최대’ 같은 참담한 고용 지표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일자리 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에서도 ‘고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부처 명칭이 현재처럼 바뀐 이래 약칭은 늘 고용부였는데, 현 정부 들어 부처 보도자료에선 노동부라 칭한다. 민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산재 근절에 직을 걸고, 노란봉투법 등 노동 현안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서도 일자리는 후순위다. 96번째 과제가 ‘통합과 성장의 혁신적 일자리 정책’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각론은 불분명하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기업 법안 통과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탈 우려에 대해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는 게 꼭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국내 노동의 질이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데 왜 국내 고용이 좋아진다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22일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전략’에도 일자리 고민은 빠져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전환 과정에서 고용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정부의 대답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분도 있고 늘어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마찰적 실업 문제는 대안을 만들어 보겠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은 일자리 창출
오히려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은 일자리 감축을 부추기고 있다. 센 상법에 더 센 상법, 더 더 센 상법까지 몰아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근로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노란봉투법은 기업들을 경영 불가 상태로 내모는 ‘검은봉투법’이 됐다. 정부가 주시하는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지성은 노란봉투법의 본질을 꿰뚫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자동화 확대와 일자리 감소를 예상하고 로봇 관련주에 투심이 쏠렸다.
정부와 여당이 주식 시세표만 들여다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정책 발표에 대해 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정책 효능성이 좋고 단기간에 큰 성과를 보일 수 있다. 반면 일자리 정책은 열심히 해도 당장 표가 나지 않고, 오히려 노동시장 개혁 과정에서 반발과 저항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진짜 ‘반드시 가야 할 길’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5년 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오르내릴 주가가 아니라 일자리 성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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