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기용]‘케데헌’ 열풍이 남긴 씁쓸한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28일 23시 18분


코멘트
김기용 산업2부장
김기용 산업2부장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케데헌)’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케데헌 누적 시청 수는 2억3600만 회로 지금까지 넷플릭스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본 영화 1위에 올랐다. 수록곡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내외 유명 가수들은 잇따라 골든을 부르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세계에서 골든을 가장 잘 부르는 사람을 뽑자며 ‘천하제일 골든 대회’를 열고 있을 정도다.

케데헌의 인기로 K팝뿐만 아니라 케데헌에 등장한 갓, 김밥, 라면, 남산타워, 낙산공원 성곽길 등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낙산공원 주변 상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이 체감상 10배는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美 넷플릭스 케데헌 지식재산권 보유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케데헌으로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 기업 넷플릭스다. 케데헌의 모든 지식재산권(IP)을 넷플릭스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케데헌이 만들어내는 IP 가치는 현재 10억 달러(약 1조39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케데헌 같은 콘텐츠를 ‘슈퍼 IP’라고 부른다. 하나의 강력한 원천 콘텐츠가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상품(굿즈)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돼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슈퍼 IP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포켓몬’처럼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고 캐릭터를 중심으로 팬덤이 구성되기도 한다. 여러 산업에 걸쳐 활용될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증가한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슈퍼 IP 50’을 조사한 결과 미키마우스, 트랜스포머, 배트맨 등 32개를 보유한 미국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 미국은 슈퍼 IP를 통해 약 338조 원을 벌어들였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일본은 포켓몬, 헬로키티 등 7개, 중국도 ‘양과 회색늑대’라는 슈퍼 IP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도 없었다.

‘제2의 케데헌’은 한국의 것으로

케데헌의 인기와 별개로 현재 한국 콘텐츠 산업은 극심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업계에 따르면 K드라마 제작 편수는 2019년 120여 편에서 2023년 70여 편으로 약 40%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평균 제작비는 4배 이상 증가했다. 넷플릭스 같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제작사들이 제작비를 밀어 올리면서 양질의 콘텐츠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많은 국민을 웃고 울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경우 국내 한 제작사가 제작비로 300억 원 정도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2배 많은 600억 원을 제시하면서 한국 제작사를 제치고 IP를 가져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오히려 ‘IP 빈곤국’이 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케데헌의 성공 근간에는 한국 기업들이 30년 동안 힘들게 쌓아온 K컬처가 있다. 최근 영화, 음악, 뷰티, 푸드 등에서는 이런 K컬처를 양분 삼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이제 케데헌 같은 슈퍼 IP를 우리가 직접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본력이 부족한 한국 제작사를 위해 ‘IP 주권 펀드’를 조성해 제작사를 지원하고 IP를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또 IP 수출 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해 보인다. 30년 내공의 K컬처 토대 위에 탄생할 ‘제2의 케데헌’마저 다른 나라에 내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과 내일#케데헌#넷플릭스#지식재산권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