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임수]물·원전·환경 다 품은 ‘공룡부처’의 탄생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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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정임수 논설위원
환경부가 대대적으로 몸집을 키운 건 2018년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린 ‘업무지시 5호’에 따라 30년 넘게 국토교통부와 나눠 맡던 물관리 업무를 가져오면서다. 수질·환경 규제를 앞세운 환경부가 수량·하천 관리까지 넘겨받으면서 치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논란이 많았는데, 지금도 극한 홍수와 가뭄이 반복될 때면 환경부 중심의 물관리 일원화가 도마에 오른다.

환경 규제-에너지 육성, 충돌 불가피

이제 환경부는 7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대형 부처로 변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첫 조직 개편안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담하는 에너지 정책을 가져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되는 것이다. 환경부에 전력과 재생에너지·원전 등 에너지 전반의 정책 기능을 몰아주고, 산업부에는 원전 수출과 석유·석탄·가스 같은 화석연료 정책만 남긴다고 한다.

새 환경부는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 등 메가 에너지 공기업들을 거느리고 기후대응기금 등 막대한 재원도 관리하게 된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 탄소 중립에 속도를 낼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는 취지이지만, 비대한 권한을 분산하겠다며 기획재정부를 쪼개 놓고 또 다른 ‘공룡 부처’를 만드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이 산업부에서 분리되는 건 1993년 상공자원부 출범 이후 32년 만이다. 이번에도 ‘규제 DNA’를 가진 환경부가 국가전략산업인 에너지 산업을 총괄하는 데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온실가스 감축, 원전 감축 등에 초점을 맞춘 환경부가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도록 관련 산업을 육성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창(에너지 진흥)과 방패(환경 규제)를 한꺼번에 내세우는 모순의 부처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새 환경부가 규제를 강화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로 급격히 방향타를 틀 경우 전력 생산단가가 오르고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키울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환경부는 2035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67%까지 줄이는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문재인 정부 때 수립한 ‘2030년 40%’ 감축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데, 환경단체 등이 주장하는 목표치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새 조직 체계에선 산업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환경부 과속을 제어했던 산업부의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탈원전론자로 꼽혔던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9일 간담회에서 거듭 “탈원전은 없다”면서도 전임 정부에서 계획한 신규 원전 2기 건설과 관련해 재검토를 시사했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실현하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데, 감(減)원전과 비싼 재생에너지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비용도 문제지만 원전 없이 전기 먹는 하마인 AI를 키운다는 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쪼개진 원전 관리, 생태계 훼손 우려

국내 원전 건설과 운영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맡고 원전 수출은 산업부가 담당하는 이원화 구조는 원전 생태계를 위축시킬 여지가 적지 않다. 신규 원전 건설과 기술 개발에 소극적인 나라의 원전을 어떤 국가가 선택하겠나. 미국과 유럽의 원전 재건 바람을 타고 세계 시장이 열리는 와중에 K원전의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고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결과가 될까 우려스럽다.

국가 에너지 대계를 뿌리째 흔드는 조직 개편을 정부·여당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이달 하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한 만큼 그때까지라도 전문가와 각계 의견을 수렴해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전기가 국가 경쟁력이 된 시대에 기후 위기 컨트롤타워가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민 부담을 키운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책임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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