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는 미국의 제조업 생태계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현지 고용만으로는 도저히 공장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투자 기업들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우선 인건비가 한국보다 5∼6배,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높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그나마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주정부는 편리한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제공해 투자라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인력 확보부터 밸류체인 확보까지 골치 아픈 일이 한두개가 아니었다고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인들이 게으르다는 게 아니다. 제조업에 손 뗀 지 너무 오래돼 ‘제조업 마인드’ 자체가 없다”며 “동종 업계 경력이 있는 엔지니어를 찾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했다.
투자해도 줄어드는 美 제조업 일자리
미국 젊은 층은 스마트폰 소지가 불가능한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한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일한 만큼 많이 팁을 버는 외식 서비스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 한국 기업은 일부러 제조업에 익숙한 베트남계 이민자 밀집 지역에 공장을 지었다고 했다. 또 다른 기업은 공장 부지를 선정할 때, ‘차로 6시간 이내에 공과대학이 몇 개 있는지’를 기준에 넣었다.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언론 액시오스에 따르면 대만 TSMC의 미 애리조나주 공장 근로자 3000여 명 중 절반이 대만인이다.
미국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들의 고충은 제조업 부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보조금을 줘도, 아무리 관세로 위협해도 인력자원 확대나 밸류체인 조성이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수년 동안 미국에 천문학적 투자가 쏟아져도 미 제조업 일자리는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달에만 1만2000개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1979년 20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미 제조업 일자리는 현재 1280만 명 선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미 금융기관 웰스파고는 최근 보고서에서 1979년 제조업 전성시대로 돌아가려면 약 3조 달러의 신규 투자와 새 공장을 채울 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소터 애널리틱스라는 산업안전 기업의 1020세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오직 14%만 공장에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웰스파고의 결론은 “트럼프 관세 정책의 목적인 미국 제조업 고용을 1970년대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은 ‘험난한 싸움(Uphill Battle)’”이라는 것이었다. 단기간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장기전도 될까 말까란 얘기다.
獨 제조업도 한순간에 내리막
제조업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미국은 1980년대 자동차 경쟁력 약화가 단초가 됐다. 자동차가 무너지면 후방의 철강, 석유화학, 기계 산업까지 여파가 미친다. 제조업 모범국이던 독일도 최근 자동차를 시작으로 전후방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위기 조짐이 나타난 2019년 이후 지난달까지 독일 제조업 일자리 25만 개가 날아갔다. 6년 동안 경제 규모는 고작 0.1% 성장했고 최근 2년은 내리 마이너스다. 워싱턴포스트는 독일을 ‘유럽의 게으른 나라’로 칭하며 “한때 근면함으로 유명했던 독일은 국민들이 점점 더 적게 일하게 되면서 경제적·존재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재계 고위 관계자도 “높은 에너지 비용, 악명 높은 노동 생산성에 ‘독일 생산 시대는 끝났다’며 아시아로의 공장 이전을 묻는 독일 기업이 적지 않다”고 했다. 최강국 미국이나 독일도 제조업 붕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도 지난달까지 14개월째 제조업 고용이 줄며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이 재계 인사는 “독일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제 와 독일 복지나 노동 제도를 따라 하려는 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다”고도 덧붙였다. 생각해 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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