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은 모두 14명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조희대 코트’는 내년 3월 노태악 대법관이 퇴임할 때까지 인사 요인이 없다. 조 대법원장은 70세 정년으로 6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년 반 만에 물러나지만 2027년 6월 임기가 끝난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반환점까지 교체할 수 있는 대법관 숫자는 조 대법원장을 포함해 5명뿐이다. 전체의 절반이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과반(8명)을 넘기려면 2029년 7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꿔 말하면 2030년 5월 임기가 끝나는 이 대통령은 재임 5년 중 4년이 넘도록 사법 권력을 교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4년간 사법 권력 교체 못 하는 이례적 상황
사실 대통령과 대법관의 임기가 각각 5년과 6년이어서 대법원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 범위는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정부는 민주화 이후를 보더라도 이례적으로 집권 초중반에 대법관 구조를 손댈 수 없는 특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 대통령권한대행 시절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 때 대법관 10명이 임명된 것이 후임 대통령의 인사권 축소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법관 6명만 임명하고 중도 하차하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8명을 취임 후 1년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교체할 수 있었던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여당이 대법관 증원을 핵심으로 하는 사법개혁 입법을 밀어붙이는 진짜 의도는 이런 사법부의 권력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여당은 대선 전엔 대법관을 100명까지 늘린다고 하더니, 30명을 거쳐 현재는 26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 정도라도 지금보다 12명이 늘어나는데, 추가된 대법관 전원과 현 정부에서 임명할 예정이던 대법관 10명을 합치면 총 22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게 된다. 여당의 구상대로라면 전체 대법관 26명 중 22명을 바꾸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주류를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대규모로 바꾸려는 것처럼 보인다.
대법원 사건 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고 법원의 다양한 개혁 방안은 상고허가제, 고법 상고부 설치, 상고법원 신설 등 20년 넘게 법원 안팎에서 논의됐다. 그중에서 대법관 증원은 ‘최후의 수단’에 가까웠을 만큼 선호도가 가장 낮았다. 이것도 여당의 대법관 증원 추진이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이런저런 오해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여당은 기존 관례대로 사법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참여나 동의 없는 입법은 안 된다. 사법부를 정부 부처의 하나쯤으로 취급해선 법이 시행되더라도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을 최종 판단하는데,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새 대통령과 갈등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반의 대법관을 확보하기 위해 대법관의 전체 숫자를 늘리려는 ‘분모 바꾸기’는 과거 어느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선수가 심판을 모두 예스맨으로 바꾸는 것”
미국에선 대공황 때 연방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대법관 증원 입법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선수가 심판을 모두 예스맨으로 바꾸려는 삼권 분립 침해라는 비판, 이로 인한 여론 악화와 집권 세력 내부의 분열로 그런 시도가 무산됐다. 만약 여당 안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과반 의석을 가진 새 정부가 인위적인 사법부 재편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법관 증원을 사법 개혁의 이름으로 밀어붙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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