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족한 기증 장기를 늘리기 위해 심정지를 기준으로 장기 기증 여부를 판단하는 ‘순환정지 후 장기 기증(DCD)’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금할 수 없다. 이식을 위해 등록한 환자 중 매일 7, 8명이 기증 장기를 기다리다 사망한다니 더더욱 그렇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관련 학회, 각국 정부 대표들과 함께 ‘이스탄불 선언’을 발표했다. 장기 밀매와 이식 관광을 금지하고, 각국이 자국민의 이식에 필요한 장기를 스스로 공급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한국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을 개정하고, 장기 기증이 보다 능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독립 장기 구득 기관을 설립해 뇌사자 장기 기증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과 의료계 안팎의 문제로 뇌사자 기증이 다시 정체되고 있어 정부와 의료계는 ‘순환정지 후 기증’을 새로운 기증자군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유럽과 미국은 뇌사자와 함께 순환정지 후 기증을 조기에 도입해 인구 100만 명당 사망 시 기증자 수가 25∼45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나, 한국은 몇 년째 10명 이하에 머물고 있다. 만일 국내에서도 순환정지 후 기증이 시행된다면 산술적으로 3배 이상의 기증 증가가 예상된다.
기증자 확보는 국민의 치료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기증자 수의 증가에만 집중하다 보면 기증자와 가족의 인권, 생명의 존엄성 등 윤리적 측면이 소홀해질 수 있어 세밀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대상 환자도 광범위하고 비가역적인 뇌 손상 환자, 연명의료 중단 환자 등으로 엄격하게 선별돼야 한다. 특히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장기 기능 유지를 위한 약물 사용 및 시술 범위 등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순환정지 후 기증의 경우, 사망이 선언되면 뇌사 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장기를 적출해야 하므로 정밀한 프로토콜과 의료진 간 협조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또 기증이 응급상황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충분한 인력과 수술실 공간 확보가 중요하다. 아울러 수혜자 매칭 시간이 부족할 수 있어 적출된 장기의 기능을 유지·보존하기 위한 체외관류기계의 준비와 인력 보강도 필수적이다.
생명유지장치 제거 후 자발적 순환 회복 가능성이 완전히 없음을 판단하기 위한 최후 관찰 시간(no touch period)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해야 한다. 또한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는 가족이 새로운 기증 과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의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상 뇌사는 그 자체로 사망이 아니며, 가족이 장기 기증에 동의했을 때만 사망으로 인정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순환정지 후 기증을 합법화하려면 우선 뇌사자를 순환정지자와 함께 사망자로 규정하고, 이들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장기 공급원의 확보로 더 많은 이식 대기자들이 이식을 받고, 기증자를 대신해 활기차게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을 통해 기증자 가족들이 위로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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