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협상단은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쌀과 소고기를 지켜냈다고 자평한다. 유럽연합(EU), 일본과 같은 수준의 상호관세 15%를 확보한 점도 성과로 내세운다. 그러나 소탐대실의 결과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투자펀드 3500억 달러에 더해 식량안보를 지킨 대가로 다른 전략산업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철강에 부과된 50% 품목관세다.
이제는 식량안보만을 절대시하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안보는 훨씬 더 넓고 복합적인 개념이다. 전통적인 국방안보를 넘어, 식량·에너지·철강·반도체 등 국가 기반을 떠받치는 모든 기간산업을 포괄하는 ‘경제안보’로 확장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철강은 국방안보와 경제안보를 동시에 지탱하는 핵심 자원이다.
철강안보의 중요성은 역사가 증명한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도 철의 부족이었다. 조선에서 가정집 솥단지부터 사찰의 종까지 쇠붙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뜯어갈 만큼 철이 모자란 채 미국과 맞섰으니, 패배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제철산업에 필수적인 석탄이 풍부한 알자스로렌 지방을 차지하고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한 사건이 배경이다.
이번 철강 50% 관세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다. 이미 중국발 과잉 공급과 탄소중립 부담에 시달리던 국내 철강산업은 이제 삼중고에 빠졌다. 자칫 산업 자체가 고사할 위험마저 있다. 철강산업의 붕괴는 곧 국가안보의 균열이다. 따라서 철강산업을 지키는 것은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이자 안보 전략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넘기 어려운 파고다. 국가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관세나 중국의 공급 공세는 외생변수로 우리가 어쩔 수 없지만 탄소중립이라는 파고만큼은 국가의 지원과 함께 넘어설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철강산업이 탄소중립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기술적 대안이다. 관건은 값싸고 안정적인 수소 확보다. 수전해 방식의 수소 생산 단가는 전기 가격에 달려 있다. 한전이 전기 구매 시 지급하는 정산단가를 보면, 2024년 기준 원전은 kWh당 66.3원으로 신재생(138.8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비용까지 얹히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과 국내 재생에너지 여건을 고려할 때, 원전 수소에 기반한 수소환원제철만이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감가상각이 끝난 기존 원전을 활용하면 경제성은 더욱 개선된다.
우리에게는 계속 운전 기간을 4년 이상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멈춰 있는 원전이 있다. 경제성 평가 논란과 함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조기 폐로가 결정된 월성1호기다. 포스코와 월성1호기를 결합하면,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는 수소환원제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월성1호기의 재가동이든, 원전과 산업체 간 전력구매계약(PPA)이든, 원전의 계속 운전이든 모두 국가가 허락해야 가능하다. 철강안보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도움닫기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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