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정]한미 관세협상 타결이 종착역 아닌 새 출발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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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타결은 새 통상질서 속 생존 과제 안겨
경제 블록화-수출 압박-산업공동화에 직면
CPTPP 가입은 필수, 韓日 경제통합도 고려
美中 의존도 낮추고, 수출 다변화 전략 짜야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일단 시장은 안도했고, 기업들도 당장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난 듯하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은 결과일 뿐,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관세 합의가 가져올 단기적 안정감 뒤에는 세계 경제 블록화, 한국의 수출 감소,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 등 복합적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부터 전략적 대응 방향이 향후 한국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우선 이번 협정으로 한국은 미국 주도의 경제 블록에 더욱 깊게 편입됐다. 세계 경제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말과 ‘트럼프 라운드’로 불리는 고관세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이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국가들의 지역 블록화가 진행될 것이다.

지역경제 블록화는 단순한 무역 파트너십이 아닌 관세, 투자, 공급망, 기술표준을 공유하는 배타적 경제권역이다. 2018년 일본 주도로 출범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의 가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한일 간 경제 통합도 우리 경제의 생존 전략에 포함해야 할 때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적인 공급망과 시장 접근 및 높은 수준의 기술표준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해 줄 수 있고, 한일 간 경제 통합은 양국 간 기술·부품·소재 협력을 강화해 역내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번 상호관세율 인하는 최악의 결과를 막아낸 것이지만, 한국의 수출 주도형 성장 구조에 주는 압박은 지속될 것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은 약 1284억 달러(18.8%), 대중 수출은 약 1329억 달러(19.4%)였고, 총수출은 6838억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한미 협상의 결과로 9월 중순부터 미국의 상호관세율이 기존 25%에서 15%로 인하되면 대미 수출품목의 가격경쟁력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관세가 30%로 고착화되거나 중국의 내수 경기 둔화와 핵심 품목 기술규제 강화가 이어질 경우 한국의 대중 수출은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제3국 수출 다변화 전략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총수출 증대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 성장의 한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다. 첨단 주력 산업 부문의 대규모 대미 투자로 생길 수 있는 산업 공동화(국내 투자 감소→고용 감소→지역경제 황폐화)를 막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가 진행되는 만큼 국내 첨단 공정·패키징 기술 등 반도체 생산과 기술 투자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정부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자국 내 재투자 요구 속에서도 국내 기술 기반을 약화시키지 않을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에 공장 투자를 통해 현지 시장 진출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에 국내에서는 고부가가치 연구개발(R&D)을 집중 육성해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고용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조선업은 미 에너지·방산 프로젝트와 연계해 국내에서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방산 분야는 한미 공동 개발 및 생산을 통해 세계 수출 시장과 기술 고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철강 역시 특수강 및 친환경 공정 투자와 미국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세계 수출 기반을 장기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정된 한일과 한미 정상회담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첨단 기술 개발과 공급망 협력을 ‘실행형’ 합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한일 경제협력 공동체 구성의 출발을 알려야 한다. 예컨대 반도체 분야에서 희소금속 및 소재 공동 비축, 핵심 부품 공동 개발, 표준규격 통일 등을 패키지로 추진한다면 글로벌 공급망 내 양국 협력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은 최근 관세협상의 후속판 성격을 갖는다. 그런 만큼 주요 품목관세 적용 시점, 투자 집행 일정, 일부 농수산물 품목 보호 조건 등 불투명했던 부분을 명확히 하고 산업별 세부 이행 로드맵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번 기회에 미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도 협의해 미 주도 경제 블록 내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은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데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더 이상 “협상을 잘했는가”가 아니라 “새로운 통상질서 안에서 한국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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