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론 전공자로서 우리 사회와 고위 공직자들의 여러 문제점을 직시해 왔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비판해 왔다.”
막말 논란을 일으킨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지난달 29일 입장문에서 “향후 더욱 신중한 언행으로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에 걸맞은 공직자의 자세를 갖겠다”고 사과하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형식적으로 사과는 했지만 자신의 막말을 인정하지 않고 여러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할 만한 비판이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그가 과거에 유튜브 등에서 한 말을 보면 고위 공직자로서의 인성과 자질이 의심될 만큼 원색적인 비난과 조롱이 많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오늘날 우리 국민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천”이라고 말했고, 문 전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건배하는 사진을 두고는 “무능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끼리 논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에 대해선 “정치판의 바이러스”라고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해선 “다시는 정치판에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할 사람”이라고 하는 등 비판은 이재명 정부 주요 인사들도 가리지 않았다.
국가공무원의 인사는 물론 윤리·복무 등 업무를 관장하는 인사혁신처의 수장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조차 없었다. 반면 최 처장은 유독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선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최 처장의 기용은 확실하게 내 편을 들어야 고위 공직자로 임명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있다.
끊임없는 논란에도 최 처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여권 내 분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 처장의 발언을 두고 친문(친문재인)계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치욕스럽다”고 밝혔다. 박범계 의원도 “현 인사혁신처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좀 어려운 그런 태도와 철학을 (과거에) 갖고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대통령에게도 앞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내 비주류인 친문 진영은 당장은 “최 처장을 경질하라”고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특히 친문 진영의 ‘과거 권력’인 문 전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조 전 대표에 대해 최 처장이 싸잡아 비난한 것은 앞으로도 친문 진영의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친문 진영을 향해 모욕적 발언을 한 인사를 발탁한 것 자체가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선 긋기 하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민주당 정부 시절에도 이전 정부와의 선 긋기가 분열을 초래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송금 특검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인한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사태 등을 계기로 친노(친노무현)와 동교동계 등 김대중 정부 출신 인사들은 수년간 반목을 거듭했다. 최 처장 거취 문제가 당장은 지나가는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향후 여권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이 문제를 묵과하는 것에 의아하다는 의견이 많다. 인사 실패를 인정하기 쉽지 않겠지만 자칫하다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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