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윤정]소버린 AI도 중요하지만 ‘살아남는’ AI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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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산업1부 차장
장윤정 산업1부 차장
‘국가대표 인공지능(AI)’ 서바이벌 경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4일 이재명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착수할 5개 정예팀이 선발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데이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지원하고, 대국민 콘테스트 방식의 경쟁 평가를 거쳐 최종 2개 팀만을 남겨 최신 글로벌 AI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의 ‘소버린 AI’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챗GPT 같은 글로벌 모델에 의존하면서 생길 수 있는 기술 종속과 정보 유출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국방·보건 등 민감한 사안 등을 글로벌 AI에 맡길 수 없다는 논리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AI 모델의 성능에 100%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국가대표 AI를 가지고 있는 것과 안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 등도 비슷한 이유에서 소버린 AI를 추진해왔다. AI 산업의 변방으로 밀려나기 전에 정부 주도로 AI 3대 강국을 향해 드라이브를 거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불안감이 채 가시지 않는 건, ‘국가대표 AI’라는 결과물 자체보다 사실 그 결과물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억 명의 이용자가 매일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숙제하고 보고서를 쓰며, 개인 비서로 활용하며, 누군가는 심리상담을 하며 대화 기록을 쌓고 생태계를 경험하고 있다. 한번 익숙해진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쉽게 바꾸지 않듯, AI 시장에도 습관의 힘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성능 지표보다 더 무서운 장벽이다. 게다가 엄청난 자금력의 빅테크들은 소비자들을 자신들의 AI 모델에 ‘록인(lock-in·소비자 묶어두기)’시켜 놓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구글이 국내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원래 유료인 제미나이 기반 ‘구글 AI 프로’ 멤버십을 1년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어렵게 한국판 챗GPT를 만들더라도 이용자와 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국내 전용 AI, 공공기관용 AI로 전락할 수 있다.

이미 닻을 올린 AI 선발전이지만 진행 양상도 다소 아쉽다. AI 산업은 협업과 네트워크 효과가 핵심인데,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한 팀씩 탈락시키는 방식이 과연 최선일까. ‘대국민 콘테스트’가 보여주기 경쟁으로 흐르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5개 정예팀 사이에는 첫 탈락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감지된다.

더 우려되는 건 논의가 소버린 AI에 매몰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소버린 AI 만들기’ 자체는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AI 생태계를 육성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AI 트렌드를 따라잡고, 무엇보다 한국만의 경쟁 우위를 찾아내는 일이다. 소버린 AI가 하나의 이정표는 될 수 있지만, 종착지는 아니다. 더 넓은 길을 내고 여러 갈래의 트랙을 준비해야 한다. AI 인재는 물론 버티컬 AI(특정 산업에 특화된 AI)를 만들어 낼 스타트업 등을 더 풍성하게 키워내고 대학·기업·연구소를 연결하는 개방형 플랫폼도 조성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가대표 AI’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받고 ‘살아남는 AI’다.

#국가대표 AI#소버린 AI#인공지능 경쟁#AI 파운데이션 모델#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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