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수정]‘피터팬’ 만드는 규제 없애야 ‘성장 사다리’ 복원할 수 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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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1일부터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매출 기준이 10년 만에 최대 1500억 원에서 1800억 원으로 상향됐다. 기준이 완화되면서 중견기업으로 넘어갔던 300여 곳이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했다.

중소기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물가가 상승하고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실질 성장 없이 매출만 늘어난 외형 성장이 많았다며 이번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중견기업계에서는 이러한 기준 완화가 성장하기를 주저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현행 매출 기준 상한선은 이미 영국, 미국 등 주요국의 두 배 수준”이라며 “정책 지원이 대부분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어 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올라갈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피터팬 증후군은 심리학자인 댄 카일리 박사가 1983년에 저술한 책 ‘피터팬 증후군: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서 유래한 용어다. 성년이 되었지만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이로 남기를 바라는 심리를 말한다. 몸집이 커져 중견기업이 되었지만 중소기업으로 남아 계속 지원받기를 원하는 현상을 중소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한다.

중소기업 기준은 조세 감면, 금융 지원, 규제 완화 등 정부 정책의 적용 대상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한 기업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적용받는 규제가 57개에서 183개로 세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중소기업에만 적용되는 대출이나 특별세액 감면, 공공기관 입찰 우대 같은 혜택이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현장에서는 중소기업 졸업을 피하기 위해 분사나 상시근로자 조정 같은 기업 쪼개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2023년 기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301개, 거꾸로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곳은 두 배 수준인 574개나 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기업 생태계가 성장보다는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며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원활한 기업 성장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중소기업에 집중된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8년 1422개였던 중소기업 지원 사업은 2023년 1646개로 늘었고, 예산도 21조9000억 원에서 35조 원으로 60%나 늘었다. 중소기업 지원은 강화되고 있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 경쟁력 순위는 20년 전 41위에서 지난해 61위로 오히려 떨어지는 추세다. 보호 일변도 정책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가 전년 대비 0.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0%대 성장률’ 속에서 어느 때보다 경제 성장 활력을 되찾아야 하는 시기다. 위기감 속에서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최근 ‘성장지향형 기업생태계 구축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경제계가 ‘기업 성장 생태계’라는 깃발 아래 TF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장하기를 두려워하는 환경 속에서는 혁신도, 미래도 없다. 정부와 경제계가 손잡고 끊어진 성장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속도를 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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