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미국연방수사국(FBI) 55개 지부의 요원은 일제히 ‘악마’의 집 문을 두드렸다. 압수한 노트북에선 많게는 2900개의 아동 성 착취물이 나왔다. 작전명 ‘정의 구현(Restore Justice)’. 그렇게 5일 만에 205명이 체포되고 피해 아동 115명이 가해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중 일리노이주에서 잡힌 41세 남성은 채팅에서 꾀어낸 10세 소녀를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다.
방식은 이랬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정보통신 기업은 법적 의무에 따라 성 착취물 자료를 아동실종·착취센터(NCMEC)에 신고했다. FBI는 거기서 구매자의 인터넷주소(IP주소)와 결제 기록을 추적했다. 영상 만든 쪽뿐 아니라 내려받아 본 사람까지 정면으로 겨눴다.
영국과 캐나다, 호주도 NCMEC 같은 실시간 단서 수집망을 갖추고 있다. 각 나라 기관이 정보를 서로 나눈다. 이렇게 해마다 수천만 건의 자료를 추적하고, 이를 수요자 단속으로 연결한다.
우리의 현실은 ‘맨눈으로 바늘 찾기’다. 아동 성 착취물이나 불법 촬영물, 딥페이크 음란물 등 성 착취물 판매자가 잡히면 그에게서 영상을 산 몇몇이 덩달아 걸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어쩌다 걸려든’ 이들이 주로 처벌된다. 미국처럼 광범위한 수요자를 정조준한 수사는 드물다. NCMEC 같은 체계를 갖추지 못해서다. 그렇게 방치된 영상은 또 퍼져나가 피해자를 끝없는 두려움 속에 가둔다.
불법 촬영물의 경우 잡힌 이들마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3374건을 내려받은 피고인도 고작 벌금 700만 원만 냈다. 법에는 단 1개만 사거나 갖고 있어도 징역 3년을 선고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법정에서는 딴 세상 얘기다. 신상 공개까지 이어진 사례도 찾기 힘들다.
수요는 내버려둔 채 공급만 막으려다 보니 유통망은 이름만 바꿔 되살아난다. 텔레그램을 틀어막자 금세 작은 해외 플랫폼으로 옮겨간 ‘n번방 망명’이 대표적이다. 서버는 외국에 있고 운영자 신원도 알 수 없어 접속 차단이나 압수수색은 번번이 벽에 부딪힌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NCMEC 같은 ‘K-사이버팁라인’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네이버·카카오·KT 같은 업체에서 의심 자료를 실시간으로 넘겨받아 모으는 것이다. 이런 체계를 갖춰야 NCMEC 같은 국제공조망에도 자연스레 합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구매자를 한꺼번에 잡는 대규모 위장 수사도 고려할 때가 됐다. FBI는 성 착취물을 퍼뜨리던 서버를 압수하면 잠시 운영자로 위장해 접속자를 역추적해 구매자를 잡아들이고 있다. 2012년부터 이렇게 잡아들인 구매자만 1000명이 넘는다. ‘보기만 해도 범죄’라는 경고를 뇌리에 박아 넣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공급만 잡는 건 잡초의 뿌리는 두고 잎만 잘라내는 꼴이다. 새로운 망명지가 끊임없이 생길 뿐, 피해자는 여전히 불안 속에 산다. 이제는 화살을 사는 사람에게 겨냥해야 한다. 성 착취물은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범죄다. ‘나도 한 번 내려받아 볼까’라는 유혹 앞에서 누구나 “걸리면 끝장이다”라는 공포를 느끼게 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