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서현]블랙기업이 되어 버린 학교… ‘탈교사’ 꿈꾸는 젊은교사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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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20대 A 씨는 최근 사직서를 쓰고 공인회계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교사를 꿈꿨지만, 학교는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엔 훨씬 힘든 곳이었다. 크고 작은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고,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도 정작 문제가 생기면 학교가 나를 보호해 줄지 늘 의문이 들었다.

수도권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올해 하반기 기업 공채에 지원 중인 B 씨도 진로를 바꿨다. 교사로 임용된 이듬해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하며 동료 교사들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고 했다. 애초에 소득보다 명예를 보고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기업에 입사한 고교 친구들과의 급여 차이를 체감하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교육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도 퇴직 교원 수는 2020년 6704명에서 지난해 7988명으로 늘었다. A 교사와 B 교사 사례처럼 근속 연수 5년 미만 교사 퇴직자는 같은 기간 290명에서 380명으로 31% 증가했다. 퇴직 교사 중 저연차 비율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안정적 직장의 상징이었던 대한민국 학교는 어째서 젊은 교사들에게 저임금과 불합리한 노동을 뜻하는 ‘블랙기업’으로 전락했을까. 교사들이 평생직장을 저버리는 이유는 악성 민원과 과도한 행정 업무, 그에 비해 적은 급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학급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아이가 싫어하는 친구 옆에 세웠다고,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학부모에게 항의를 받는 건 예삿일이다. 점심시간 중 아이 옷에 음식이 묻으면 옷을 빨아 보내 달라는 주문을 받거나, 분노에 가득 찬 민원 메시지를 밤새 수십, 수백 통 받는 경우도 있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벌어지고 이른바 ‘교권 4법’이 통과됐지만 현장 교사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낀다. 민원 대응팀을 신설하겠다고 했지만 1차 민원은 모두 현장 교사에게 쏠리고 본인만 귀찮아지기 때문에, 또 어차피 해결된다는 기대가 없어 교사들은 교권보호위원회까지 가는 것을 꺼린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해 4월 전국 교사 406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6.8%가 최근 1년 이내 악성 민원으로 교육활동을 침해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5년 차 교사 C 씨는 “수준 높은 공교육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원 팀’이 되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교사가 기피 직업이 되면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이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말 서울교대에서는 눈길을 끄는 행사가 열렸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교육청에서 한국 교사 초빙 설명회를 연 것이다. 워싱턴 인근 명문 학군으로 꼽히는 이 지역은 교사 부족을 해결하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앰배서더 티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우수 교사를 미국 밖에서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지난해 시범사업 형태로 한국 초등교사 10명을 선발했는데 현지에서 전문성과 교육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학교가 젊고 유능한 교사들에게 블랙기업 같은 일터로 남는 한 학계와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해외 인재 유출이 교육계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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