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 달 만에 1%대로 떨어지며 연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지만 전혀 와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같은 먹거리 가격은 오히려 상승폭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농축수산물 가격은 4.8% 올라 지난해 7월(5.5%)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생활과 밀접한 먹거리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물가가 떨어졌다고 느끼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식료품 물가는 높은 편이다. OECD 평균에 비해 식료품 물가는 56% 더 비싸다. 품목별로 보면 사과는 OECD 평균보다 약 3배, 감자와 돼지고기는 2배 수준이다.
15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복잡한 유통단계가 농산물 가격을 올리는 주요인이라고 보고 도매 거래의 절반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유통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농산물 소비자 가격에서 생산자가 받는 가격을 뺀 유통비용의 비율은 49.2%로 절반 가까이 됐다. 소비자가 1000원을 주고 농산물을 샀을 때 생산 농가가 508원, 도매법인 등 유통업체들이 492원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무, 양파 같은 농산물의 유통비용 비율은 70%를 넘는다. 1000원짜리 무를 팔아도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300원뿐이다.
한국의 농산물은 생산자에서 바로 소비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도매법인, 중도매인, 소매인 등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며 비용이 커지는 것이 오랜 문제로 지적됐다.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매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 제도가 수십 년간 이어지면서 소수 도매시장 법인을 중심으로 독과점 체제가 형성됐다. 도매법인 수수료에 중도매인과 소매인을 거칠 때마다 마진이 붙어 최종 가격을 끌어올리는 유통구조다. 국내 최대 농수산물 거래 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의 5개 도매법인 영업이익률은 20%대로 2%대인 도매·소매업 평균 영업이익률보다 훨씬 높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의 최종 목표는 생산자가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 6% 수준인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비중을 5년 안에 50%까지 높이고, 산지와 소비자 간 직거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프라인 도매시장 거래로 이뤄지던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꼭 해결해 줬으면 하는 최우선 민생 과제로 ‘물가 안정’을 꼽는다. 한국은행은 국내 식료품 가격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지면 가계 소비 여력이 7%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농산물 가격은 많이 뛰었지만 지난해 농가 소득은 오히려 전년 대비 감소해 농민들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농가 소득은 높이고 소비자 판매 가격은 낮춰 가계의 장바구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이 이번엔 지지부진하게 끝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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